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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8 "참숯"에 대하여 2004-03-26 05:45
작성자 : 鄭洋 



  “참숯”에 대하여

  숯의 쓰임이 다양해져서 요즘에는 웬만한 대형마켓에만 가도 얼마든지 숯을 살 수 있지만, 이 시를 쓸 무렵(1990년대 중반)만 해도 재래시장의 구석진 곳에서나 숯을 살 수 있었습니다. 숯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숯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시골(전북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살던 나는 그 숯을 사기 위하여 주변의 고산읍, 봉동읍, 삼례읍 등의 시장통을 헤매다가 익산시의 동이리역 근처에 있는 남부시장에 가서야 가까스로 그걸 살 수 있었습니다. 휘발유 값이 숯 값보다 훨씬 많이 든 셈이죠, 물론 그게 참숯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는 없었습니다. 태워봐야 아는 일이니까요. 파는 사람이 참숯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 줄 알고 사게 된 거죠.  

  이 시에 쓰인 그대로 참숯은 불길이 한참 이글거릴 때 순간적으로 바람구멍을 꽉 막아서 불길을 갑자기 질식시켜야 만들어지는 숯입니다. 그렇게 만든 숯이라야 불을 붙일 때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 나지 않는답니다. 음식점 같은 데서 숯불구이 요리를 시키면 고약하고 거북한 냄새나 연기가 날 때가 더러 있잖아요? 가짜 숯이 그렇답니다. 예로부터 숯은 요리할 때, 약 달일 때 등등 불을 붙일 때뿐만 아니라 간장을 담글 때나 물을 걸러먹거나 할 때도 쓰였습니다. 우물을 팔 때도 우물 밑바닥에 그 숯을 넣는 일이 많았습니다. 악취제거, 살균, 부패방지 등, 숯은 그런 정화작용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간장을 담글 때도 그 참숯을 넣어야 간장 맛이 살아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잔소리가 많았죠? 그쯤 해두고 시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까요?
  웬만큼 나이 든 사람들 가슴 속에는 그렇게 타다 만 숯덩이들이 서걱거리게 마련입니다.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타다 만 사랑, 이루지 못한 열정, 무참히 꺾인 꿈과 욕망 같은 것이 그런 것이죠. 그 꿈과 욕망들이 탈 만큼 타서 흔적도 없는 재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냄새도 연기도 안 나는 참숯이라도 되어 있다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그러나 세상일들이 어디 그렇게 숯장사 맘대로 되는 겁니까? 이 세상에는 가짜 숯들이 당연히 많죠.

  가짜 숯들, 냄새나 연기를 피워대는 그 타다 만 컴플랙스는 주변 사람들을 난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망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들은 사람을 포악하게도 잔인하게도 황폐하게도 만들고 무력하게도 하고 알콜중독자도 만들고 성격파탄으로도 몰고 심하게는 사람을 영 미치게도 만듭니다. 어설프게 타다 만 가짜 숯, 그거 참 고약한 겁니다.

  비록 타다 말기는 했지만, 그래서 하마터면 사람을 영 미치게 만들 뻔도 했지만 그 고약한 컴픝렉스들이 가까스로 삭아서, 다시 태우더라도 냄새도 연기도 안 나는 한(恨)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참숯일 겁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내 가슴 속에서 지금도 시도때도 없이 서걱거리는, 그 이글거리다다 만 고약한 숯덩이들을 냄새도 연기도 없이 감쪽같이 다시 태우고 싶다면 그건 내 지나친 욕심일까요? 다음 구절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이 시의 이해에 보다 도움이 될 겁니다.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
    내 청춘은 그나마 참숯이 되어 있는지
    언제쯤 냄새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릴지 어쩔지

     간장독에 둥둥 떠서 한평생
     이글거리지도 못할
     까만 비닐봉지 속 숯토막들이
     못 견디게 서걱거린다“                
  
  도움이 좀 됐나요? 우리들의 콤플렉스와 恨과의 관계를 더 얘기하고 싶지만 이쯤 해둡니다. 시의 해설은 대개 蛇足입니다. 좋은 시인들은 이런 뱀발을 꺼립니다. 뱀발이 필요 없는 시, 그게 바로 좋은 시죠.





-2004-03-26 05:45에 쓴글-

[2006-12-01 16:33:5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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