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새벽펀지10 . 황하.1.쓸쓸한 실소. 이병천 선생께 2004-04-15 04:07
작성자 : 鄭洋 


  


  黃河.1. 쓸쓸한 실소

  
  날씨가 좀 좋아서 어쩌다 흰 구름이 보일 때도 여간해서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도 물론 안 보입니다. 직접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그 푸른 하늘이나 별들이 내 머리 위에 틀림없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늘 뿌연 황사가 끼어 있는 이곳 제남 땅은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라고 합니다. 이곳 濟南 땅에 와서 나는 아직 한 번도 지평선을 본 일이 없습니다. 북경은 잘 다녀가셨겠지요?

  해마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전라도 김제의 만경평야는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죠. 사는 일이 답답할 때마다 나는 가끔 그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길로 드라이브를 다니곤 했는데, 아득해 보이는 그 지평선들은 사실 완벽한 지평선은 아니었습니다. 저게 바로 지평선이겠거니 하고 마지못해 가물가물하게 여겨줄 만한 그런 지평선들이죠. 마지못해 여겨주던 만경벌판의 그 지평선은 그러나 얼마나 그리운 지평선인가요.
  
  오늘은 한국어과 3학년 학생들 17 명과 함께 그 지평선을 가린 黃砂 속으로 중국인들의 母川, 黃河를 찾아 나섰습니다. 학교 앞에서 제남시 중심가를 거쳐 한 시간 반쯤 지난 뒤에야 우리를 태운 버스는 황하 근처에 닿았습니다. 길고 높다랗게 쌓인 뚝에 가려 아직 황하는 보이지 않는데, 우리 일행이 걸어가는 뚝 아랫길로 사람들을 헤집고 빵빵거리며 차들이 지나다닙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차들은 유난히 빵빵거리기를 좋아합니다. 차도 사람도 교통질서 같은 걸 가리지 않고 서로 간신히들 비켜 다니는 일이 많기 때문에 빵빵거리는 게 일상화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그 소리에 길들여졌는지 나도 이제는 그 빵빵거리는 소리에 놀라지 않습니다. 그 차들 속에 가끔 택시도 보입니다. 택시를 타면 이 길을 굳이 걷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택시비를 물어보았습니다. 택시로는 50원쯤(한국 돈 7500원) 나오고 한 시간도 안 걸린다고 하는데 1원만 내도 되는 버스를 두고 굳이 택시비를 묻는 나를 학생들은 좀 의아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한번 물어본 거라고 열적게 얼버무렸습니다.

  겹겹이 돌로 쌓아 올린 거대한 뚝 위에 올라서서 황하의 물줄기를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풀 한 포기 없는 강변의 색깔과 물줄기의 색깔이 언뜻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했습니다.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황사 속에서 흘러나와 황사로 다져진 대지를 핥으면서 더 아득한 황사 속으로 사라지는 물길, 황사가 굼실굼실 흘러가는 듯한 물길, 그 물길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차 소리와 철판 소리 속으로 다리 아래 거칠게 흘러가는 물 소리가 잦아드는 다리, 사차선 도로만큼 넓은 철제다리, 강물이 불어나면 언제든지 물에 잠길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허리를 조금만 구부려도 강물이 손에 닿는 낮은 다리, 찻길 양쪽으로 사람 다니는 길도 쇠막대로 구분을 해놓았습니다. 다리 중간 중간에 경고 표지들이 귀찮게 매달려 있고, 그중 어떤 것은 ‘保持車距’라고 적힌 것도 있어서 혼자 失笑를 하다가 퍼뜩 이선생 생각이 났습니다. 동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실소하는 건 누구를 그리워하는 일만큼이나 쓸쓸하군요.


[2006-12-01 16:35:03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