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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15. 고당현의 산수화 한 점. 김병룔선생께 2004-04-27 03:00
작성자 : 鄭洋 



  

  고당현의 산수화 한 점

  거북하고 부끄러운 건 내 몫으로 여기면 되겠지만 그림값 깎기는 이제 틀렸구나 싶어서 나는 부예서에게 절망적으로 눈을 흘겼는데 부예서는 그것도 모르나봅니다. 주인이 나에게 새삼 악수를 청하면서 명함을 건넵니다. 내 시집을 한 권 갖고 싶다고, 예술인끼리 우정을 나누고 싶다고, 나는 지금 시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다음 기회에 보내달라고, 그러마고, 부예서를 통해서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나는 꼼짝없이 견뎌야 할 그 그림값 때문에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주인은 내가 고른 산수화를 신문지에 말아 내 손에 쥐어주면서 종업원더러 카메라를 가져오라고 시킵니다. 나는 돌돌 만 그림을 손에 쥔 채로 주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절망적으로 지갑을 꺼냈습니다.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주인이 뭐라고 주절댑니다. 예술인끼리 우정을 나누자고 했지 않았느냐고, 그 산수화는 나에게 우정의 표시로 주는 거라고, 나는 엉거주춤 지갑을 손에 든 채 부예서의 통역을 듣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림값 못 깎게 된 상황만 억울하게 여기던 내 까만 지갑이 나보다 더 낯을 붉힙니다.

  젊었을 때 이런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아중리 저수지에 낚시를 나갔다가 한 나절 내내 고기도 안 물고해서 진달래꽃을 따라 저수지 뒷산(기린봉 뒤편)을 쉬엄쉬엄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대리석 광산이 하나 있었는데 노인 한 분이 광산 아래 움막 같은 사무실로 나를 끌어들이더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는 거였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노인은 한 시간도 넘게 열정적으로 秋史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지금 마침 자기가 추사 생각을 하면서 붓을 좀 다루려고 내려오는 길이라면서 지필묵을 펼치더니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추사의 不作蘭을 그려 놓고는, 오랜만에 아주 맘에 든다면서 날더러 가지고 가라는 거였습니다. 추사 얘기로 열을 올리던 노인의 열정과 그 외로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며칠 뒤 내가 찾아갔더니 노인은 없고 아들만 있어서 가지고 간 화선지 한권과 술 한 병을 아들에게 맡기고 내려왔습니다. 쌍낙관 (雙落款)까지 받은 그 작품을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지요. 알고 보니 그 노인이 난곡(蘭谷)先生이라고, 추사연구회 회장을 하신 분이더군요.

  邱士杰이라고 하는 이 사내에게도 그때의 난곡선생 비슷한 외로움이 있었던 걸까요? 하긴 나에게도 시를 써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그런 때가 어쩌다 한번씩은 있긴 했었죠. 예술인들의 그 터무니없는 외로움을 곱씹으면서 호수를 끼고 시가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호수 근처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흙인지 흙더미처럼 쌓인 산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토목공사를 보았습니다. 내가 구경한 건 北湖고 그 반대편에 南湖가 하나 더 있다는데 지금 하는 공사는 북호와 남해 사이를 파서 두 호수를 연결하는 것이고, 거기서 파낸 흙을 모아 저렇게 산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가도 가도 들판뿐인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해됨직한 공사였습니다. 흙더미의 높이가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이는, 봉우리가 두개나 되는, 나무만 잘 심어놓는다면 아닌 게 아니라 아담한 산이 될 것 같은 엄청난 흙더미를 보면서 산을 그리워하는 이 고장 사람들의 외로움을 한껏 끄덕여보았습니다. 산 없는 고장에 살면서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의 꿈과 그 외로움에 대해서도 두어 번 더 끄덕여보았습니다.  



-2004-04-27 03:00에 쓴글-

[2006-12-01 16:38:4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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