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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16 . 붓통 하나. 강인한 선생께 2004-05-04 05:56
작성자 : 鄭洋 


  

  文化市場의 붓통 하나
  강인한 선생께

  일본은 잘 다녀오셨겠지요? 김길전 선생한테서 일본에 가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헛되고 헛된 것들이, 그러나 자꾸만 마음 쓰이는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요? 따로 갈 만한 데가 없는 나는 주말이면 가끔 택시로 이곳 문화시장에 가서 한나절쯤 실컷 눈요기를 하고 옵니다. 이곳에는 문화라는 외피를 두른 벼라별 상품들이, 즐비한 가게 안은 물론이고 건물 사이의 공터나 사람들 나다니는 길바닥에까지 지겹도록 널려 있습니다. 상품들에게 길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 상품들 사이사이로 걸어다닙니다.
  
  강선생도 가끔 kbs의 진품명품 프로그램을 보시는지요? 하나하나가 모두 그 진품명품 프로에 나옴직한 물건들, 온갖 형태의 도자기나 청동제품들, 옥돌이나 비취로 된 노리개나 장식품들, 다양한 형태의 칼을 비롯한 병장기들, 동식물의 화석이나 기묘한 수석들, 출토품임을 과시하려는 듯 그것들은 흙투성이인 채로 여기저기 땅바닥에 쌍여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깨끗하게 닦이어 가게 안에 정리되어 있기도 합니다.
  
  기묘한 고목뿌리들, 목각들, 목 부러진 부처님 머리통들, 모택동 동상들, 수정이나 상아에 새겨진 도장들, 큼지막한 등치의 옥돌로 조각된 옥새 비슷한 도장들, 홍옥, 청옥, 백옥 등으로 정교하게 새겨 만든, 손잡이까지 달린 크고 작은 남근들, 그 사이사이에는 또 고서나 고서화나 한약재, 또아리를 튼 채 말라죽은 크고 작은 뱀들, 각종 차(茶), 살아 있는 거북, 한국의 그것보다 세 배쯤 커 보이는 우렁들이 적갈색 다라이에 담겨 있기도 하고 수대 안에는 또 아이들 손가락만씩한 전갈들이 제각각 꼬리를 치켜들고 우글거리기도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는 또 각종 문방구며 색안경, 확대경, 망원경, 먼지털이 빗자루 등 생활용품들이 널려 있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모두 헛되고 헛된 것들이지요.

  이곳 문화시장에는 그야말로 문화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사이사이로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다 살아 있는 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대충대충 살피며 다녀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그 숱한 문화들 속에서 나는 하필이면 흙물로 얼룩진 채 천연스럽게 나뒹굴고 있는, 크고 작은 남근들 쪽에 자꾸 눈길을 빼앗기다가 몇 차례나 그 눈길을 거두어들이곤 했습니다. 허름한 중년 사내 하나가 실물보다 훨씬 큰 남근 하나를 골라 흥정을 하다가 어슬렁어슬렁 다른 쪽으로 걸어갑니다. 한 달쯤 세수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청년 하나가 흥정하다 만 그 물건을 덜렁덜렁 들고 중년 사내를 따라갑니다. 중년 사내는 거듭 손사래를 치고 청년은 한사코 값을 깎아주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그 물건이 중년 사내의 가방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그 물건값이 잠깐 궁금합니다.

  이곳에서 아직은 아무 것도 사지 말자고 벼르면서 그 동안 눈요기만 하고 다녔는데 오늘은 유난히 눈길을 끄는 목각이 하나 있어서 값을 물어보았습니다. 400 원이라고 합니다. 높이 30 센치쯤 지름이 15 센치쯤 되는, 짙은 밤색 칠이 반들거리는 붓통, 머리 벗겨진 웃통 벗은 사내 하나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소나무 아래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부드럽고 정교하게 입체적으로 새겨진 붓통입니다. 200 원에 사자고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고 주인은 고개를 다섯 번도 더 흔듭니다. 내가 돌아서자 손가락 세 개를 펴서 흔들어 보이며 주인이 나를 따라옵니다. 나는 손을 여섯 번도 더 흔들면서 짐짓 다른 도자기를 파는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붓통 주인이 두어 번 더 나에게 말을 걸다가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좀 섭섭하긴 했지만 흥정이 그렇게 끝났더라면 그래도 좋았을 텐데,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던지 한 시간쯤 후에 나는 그 가게 앞을 다시 지나가다가 주인과 눈길이 맞았습니다. 주인이 냉큼 그 붓통을 챙겨 들고 이번에는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이며 나를 따라옵니다.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동안 주인이 고개를 서너 번씩 끄덕이고는 붓통을 나에게 건넸습니다. 묵직한 붓통을 껴안고 돌아오는 내 발길이 가볍습니다. 아내는 붓통이 아주 맘에 든다면서 묵직한 게 아무래도 박달나무 같다고 합니다. 나는 슬그머니 그 무게에 신경이 쓰입니다. 아무리 박달나무라 하더라도 그 무게가 자꾸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촛불로 밑바닥을 태워 본 그 붓통에서는 고약한 프라스틱 냄새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칠 냄새겠거니 여겼습니다. 고약하고 고약한, 헛되고 헛된 그 냄새가 창문을 다 열어도 여간해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이제 그만 헛되고 헛된 이 촛불이나 꺼야겠지요?



-2004-05-04 05:56에 쓴글-

[2006-12-01 16:39:2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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