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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8 빼앗긴 묘향산<1> (2003.11.27)
작성자 : 鄭洋 


빼앗긴 묘향산 <1>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160키로, 두 시간쯤 걸린다. 중간 중간에 있어야 할 진입로도 갈림길도 안 보이는, 그야말로 직통으로 뚫린 4차선 길이다. '향산 xx키로'라는 이정표가 가끔 보인다. 묘향산과 향산은 같은 지명인 것 같다. 맞은편 차선으로 잊어버릴 만하면 한 대씩 버스나 승용차가 지나간다. 소형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갈 만한 갈림길 하나가 보인다. 이정표에 '영변 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다.

  남쪽의 차량 50프로만 북으로 보내는 운동을 하자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교수 선생님도 동의하냐고 이병천 피디가 진지한 얼굴로 내 의견을 묻는다. 진지해 봤자다. 이병천 피디는 가끔 이렇게 농담을 진담처럼 한다. 아니, 진담을 농담처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20프로만 깎자고 했더니 이병천 피디는 단호하게 그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그의 50프로에 동의하고 만다. 이병천 피디에게 내 똥차를 뺏기기 전에 북녘에도 어서 좀 차량들이 늘어나서 이 길에 진입로나 갈림길들이 여기저기 자꾸 생겨났으면 좋겠다.  

  들판의 누런 황금물결이나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어미소와 송아지, 그리고 낚시질하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낚시질하는 이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잠깐만이라도 그가 뒤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게 무슨 강이냐고 물으려다가 안내원 선생이 졸고 있어서 그만두었다. 강물을 따라가거나 거슬러가는 길, 그 강물과 그 강변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어디서든 아름답다. 아름다운 걸 보면 언제 어디서든 나는 조금씩 슬프다. 나이 탓일 것이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근처에는 사람들이 제법 붐볐다.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의 명사들로부터 받아둔 선물을 보관해놓은 집이다. 으리으리하기가 무슨 궁전 같다. 이곳에 와서 붐비는 북녘 사람들은 그 차림새나 태도로 보아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아닌 것 같다. 북녘의 각종 단체들에서 온 단체별 참배객들일 것이다. 한 팀이 들어갈 때마다 문이 열렸다 닫힌다. 우리팀(7조 8조)이 닫힌 문 앞에 다가서면서부터 우리를 맡은 그곳 전람관 강사 선생의 강의가 시작된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경애하는 위대한 주체사상과 수령님과 장군님의 이름이 다시 우리들 귀에 못박히기 시작한다. 구리 4톤으로 만든 문인데 손가락으로 가만히 밀면 스르르 열린다고 누가 나와서 열어보라고 한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 한 여학생이 손가락으로 육중해 보이는 문을 가볍게 연다. 손가락으로 문 여는 장면을 사진으로들 찍어댄다. 문 안에 들어서자 카메라를 비롯한 소지품들을 맡기라고 한다. 헝겊으로 만든 덧신을 신고 강사 선생을 따라간다. 지하 몇 층쯤 되는지 잘 모르겠다. 출입문이 두 개씩 달린,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칸칸이 막힌 방들이 대리석으로 치장된 긴긴 회랑을 따라 즐비하다. 칸칸이 막힌 방마다 진귀한 명품들이 가득가득하다.


문의 무게가 무려 4t 그러나 특수하게 설계되어 여학생이 한명이 한손으로 문을 열수 있다


  각종 도자기 그림 글씨 들을 비롯해서 스탈린 마렌코프 정주영 등이 보낸 승용차들, 전자제품들이나 카메라들, 세계의 온갖 명사들과 남쪽의 역대 대통령들이나 장관들이나 경제인들이 보낸 각종 서화 금속공예 목공예품 등등이 방마다 빼곡빼곡하다. 김정일 기념관에 5만여 점, 김일성 기념관에 21만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받기만 한 게 아니라 또 그렇게 주기도 했을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챙겼던 기념품들은 곧 경매처분 된다는데, 왜 갑자기 그 경매처분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욕심나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그 욕심조차 잃어버릴 지경이다.
                
  그렇게 얼마를 돌아다녔는지, 걸으면서 졸면서 들으면서 일행을 따라다녔다. 두 시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버스에는 안내원 선생이 네 명이나 다섯 명쯤 동승하고 다녔는데 이 전람관 안에서는 그 안내 선생 숫자가 갑자기 배로 늘어난다. 여나믄이나 되는 안내 선생들이 우리를 그물처럼 감고 다닌다. 낯선 안내 선생들은 그 차림새가 얼핏 우리 일행 같다. 낯선 안내 선생들은 두 명씩 붙어 다닌다. 투캅스들인가? 전람관 방들의 불빛이 좀 어둡다 싶은데 회랑의 불빛은 더 어둡다. 가끔 북쪽 참배객들이 우리팀과 회랑에서 섞이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안내 선생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동무 어느 단체 소속이야? 라고 반말로 묻는다. 엉겁결에 섞인 듯한 북쪽 참배객들이 움찔 놀라며 황급히 딴 데로 피한다.


우리일행과 이북사람들이 섞여버렸다


  안내 선생이 갑자기 늘게 된 것은 이곳이 사람들 붐비는 곳이라서 우리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내 설명에 이병천 피디도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그가 고개 끄덕이는 태도로 미루어보면 나도 참 아는 게 많은 것 같다.

[2006-12-01 16:22:2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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