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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10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가 (2003.11.27)
작성자 : 鄭洋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가?

  김일성 김정일 선물전람관을 돌아다니다 지쳐버린 나는 묘향산 다녀오는 차 안에서 식곤증에 시달리는 내 나이를 곰곰 생각해 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있어서 가끔 위로도 되긴 했지만 그건 참 광고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나이든 대접을 받고 싶을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누군가가 우겨버리는 그 쓸쓸한 배반감보다, 그건 광고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현실이 더 쓸쓸하다.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동명왕릉 가는 길

  들 건너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에워싸인 낮은 구릉지대를 가르키며 이병천 연출가 선생이 저기쯤 아마 동명왕릉이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동명왕릉을 가는지 어디를 가는지 우리의 일정에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이쪽 사람들 높고 웅장한 걸 좋아하는 거 같은데 동명왕릉이 저렇게 낮은 곳에 있겠느냐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동명왕릉 입구


동명왕릉


뒷편에서 본 동명왕릉


  우리가 탄 차는 잠시 후 그 울창한 소나무 숲 쪽으로 빠지는 갈림길로 접어든다. 우리 연출가 선생은 정말 똘밤똘밤하다. 낮은 구릉지대의 그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아닌게아니라 웅장한 동명왕릉이 있다. 여러 대신들의 무덤도 그 뒤쪽에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묘도 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묘


동명왕릉 전시관

  온달묘 앞에 수줍어하는 기색을 살짝 감추는 그곳 강사 선생이 서 있고, 우리 일행들이 번갈아가며 그 옆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는다. 강사 선생의 하늘색 한복과 수줍은 표정이 곱다. 마지막 차례에 나도 그 옆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앞에서 모자를 고쳐쓰는 내 팔짱을 끼면서 강사 선생이 묻는다. 교수 선생님, 날씨가 좀 쌀쌀하디요? 강사 선생하고 같이 있으니까 쌀쌀한지 더운지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강사 선생이 살짝 웃는다. 잇속도 참 곱다.          


동명왕릉 옆의 정릉사
  
동명왕릉에서 그 아래 정릉사로 접어든다. 걷고 있는 동안 내내 강사 선생은 내 팔을 끼고 있다. 명함을 건넨다. 강사 선생은 내 명함을 읽고 고개를 두 번 가볍게 끄덕인다. 저희 아버지도 김일성대학에서 교수 사업을 하십네다. 어쩐지 저희 아버지만 같습네다. 내 딸은 결혼해서 아이가 둘입니다. 강사 선생은 스물 여섯쯤 됐나요?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십네까.

  
정릉사

  강사 선생은 내 명함을 도로 나에게 건네려 한다. 남쪽에서는 인사할 때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합니다. 가지고 계시다가 혹시 남쪽에 오실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열렬히 도와드릴 게요. 아 기래요, 내래 몰라씨요. 강사 선생이 내 명함을 챙기고 북녘의 해가 또 기울고 있다. 버스가 떠난다. 또 만납시다. 통일합시다 차 밖에서 차 안에서 서로 손을 흔든다. 손 흔드는 강사 선생의 눈길이 글썽거린다. 아차, 이름을 안 물었구나, 버스가 떠난 한참 뒤에야 나도 눈물이 핑 돈다. 팔짱 끼었던 한쪽 팔이 내내 따뜻하다.


5일내내 우리 버스 행렬의 맨 앞에서 우리의 길을 터주던 선도차량
남측으로 말하면 교통경찰인데, 담당 기관을 '교통안전부'라고 한다


[2006-12-01 16:24:2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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