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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13 서둘러 글을 마치며 (2003.11.28)
작성자 : 鄭洋 


서둘러 글을 마치며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서 삼지연 간이공항까지 갔던 일, 삼지연에서 백두산 정상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덜크덩거리며 오르던 일, 백두산 정상 근처의 바위에 커다랗게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참 건방진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곱씹던 일, 내려오면서 압록강 상류쯤으로 여겨지는 시린 계곡물에 손을 씻은 일, 김일성 대학에서 벼르고 벼르던 도서관에도 못 가보고,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그곳 문학부 교수와의 면담도 뜻을 못 이루고, 그래서 끝끝내 조운선생에 관한 어떤 자료도 구할 수 없던 일,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 위에 떠 있던 일, 옥류관에서 냉면을 두 그릇씩 먹던 일, 남북 청년학생 만남의 자리에서 학생들과 섞이어 통일춤을 추던 일, 호텔에 갇히어 호텔 로비에서 밤마다 술만 퍼마시던 일, 우리의 전대협동우회 회원 정상록 선생이 일일이 사진으로 남겨 놓은 그 모든 잊을 수 없는 일들은 언제 또 글 쓸 일이 있겠지만 설혹 글 안 쓰더라도, 사진에 안 남더라도 사실 모두 잊어도 좋은 일이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그러나 정작 잊을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우리의 '이동식 가두리'가 4박 5일 내내 끈질기게 나를 안타깝게 했고, 함께 통일춤을 추었던 여학생(김책 사범대학 3학년 학생, 이름은 모름)의 눈물범벅으로 흔들어대던 손길, 우리가 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앞으로 다가서며 더 다급하게 흔들던 그 손길도 두고두고 안타깝다. 잠깐 만났다가 기약 없이 헤어지는 남북의 이산가족들 생각이 났다. 그 여학생이 마치 내 딸 같았다. 우리 시대의 야만을 인정하면서 반갑습니다 손을 흔들고 또 만납시다 손을 흔들던, 북녘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한꺼번에 모두 안타까웠다.


우리일행들에게 손을 흔드는 북한의 대학생들

  50분밖에 안 걸리지만 그곳이 다시 만나기 어려운 먼 곳임을 확인하는 눈물, 우리의 야만에 대한 체념과 분노로 범벅진 눈물, 슬프기도 하고 무언가 억울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던, 그 눈물로 범벅진 얼굴이 자꾸 안타까웠다. 다음 행선지를 찾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도 펑펑 울었다.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 가난할지라도 민족적 정통성을 끝끝내 지키려드는 당당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년이 아니라 단 며칠만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지내보고 싶다. '지상의 도처에서 미제국주의를 몰아내자'는 붉은 구호가 또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80년대 초, 성남에 있던 새마을운동 교육원에서 나는 보름 동안 새마을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 전경환인가 하는 사람이 그곳 왕초 노릇을 하던 때다. 여러 사람의 새마을 성공사례 발표를 듣던 중에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사람 하나, 10년 동안 다섯 마을씩이나 가난한 마을을 부자 마을로 만들어 놓은 게 그 사람 업적인데, 그 사람의 힘없이 내뱉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자기가 만든 부자마을에 가 보면 그 마을 사람들이 가난했던 시절보다도 훨씬 더 불행해져 있다고, 치료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질병이나 극악한 패륜이나 사기사건 같은  악질적인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어느 마을에서 자기를 또 와달라고 하는데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 중이라던 그 마지막 말이 북에 잠깐 다녀오는 길에 불현듯이 생각난다. 천양희 시인이 쓴 시에 보면 (제목이 뭐더라?)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방글라데시라는 나라가 국민들의 행복지수 또한 세계 1위라고 한다.서울시 주부들의 44.6%가 우룰증 환자라던 며칠 전 kbs 뉴스가 새삼스럽다.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봉쇄정책과 우상화로 오랜 세월 시달리고 있는 북녘 사람들이 우리는 안타깝다. 유로나 달러를 흔전만전 뿌리는 듯한 우리의 쓰임새를 흘깃흘깃 못 본 척 부러워하면서도 오랜 세월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식민지로 살아가는 남녘 사람들을 북녘 사람들은 또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대한항공에 서로 안타깝게 여기는 서해의 짧은 가을 해가 기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밖 풍경 (서해바다쪽으로 해가 진다.)

  여기가 삼팔선쯤 되나 휴전선쯤 되나. 해방도 되기 전에 서둘러 삼팔선부터 그어놓았던 미국의 야만과, 그 밥에 그 나물인 남북의 하늘이 함께 저물고 있다. 구호와 초상화와 동상과 통제의 나라에서 간판과 부패와 패륜과 가짜가 맘놓고 득실거리는 나라로 온다. 잠시 진짜가 되었다가 다시 가짜로 되돌아오는 길인지 잠시 가짜 같은 허세를 부리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길인지 빙글빙글 롤라에 실려 나오는 내 여행가방이 낯설다. 잘 가시라 다시 만나자고, 잘 있으라 다시 만나자고 진짜와 가짜들이 어두워진 하늘 아래서 서로 안타깝게 손을 흔들고 있다. (小尾)

  뒷글

  급히 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줍쟎은 글에 귀한 사진을 얹어주신 정상록 선생께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감사드립니다.


  정상록 홈페이지  www.yesmore.net
         이메일 srjung88@dreamwiz.com

[2006-12-01 16:27:1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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