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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집의 새벽편지 2....너무 무거운 짐 (2004-02-22 17:00)
작성자 : 鄭洋 


  No.3019    해지는 집의 새벽편지 2....너무 무거운 짐  2004-02-22 17:00  

내 컴퓨터에 아직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서 학생 컴퓨터로 우선 올립니다.

山東通信
2004년 2월 20일
너무 무거운 짐

  5시 20분 티비 켜놓은 채 깜박 잠이 든 나를 아내가 깨운다. 아내는 이미 출발준비를 마치고 나를 쫌이라도 더 재울 심산이었던가 보다. 6시 리무진을 타기 전 5시 40분에 코아 앞 리무진 배차장에서 우성이를 만나 내 똥차 크레도스를 넘겨주기로 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세수도 않고 나선 새벽길이 바쁘다. 서둘러 코아 앞에 도착한 시간이  5시 42분, 우성이와 환영이가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다가 내 여행가방들을 리무진에 옮겨주었다. 가방들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 새벽에 똥차 넘겨받아 넘겨주랴, 무거운 짐 옮기랴, 나 때문에 고생들이 많다. 즈네뜰 고생보다도 내 무거운 짐이 더 꺽정스러운가 보다.
  초과된 무게만큼 돈만 더 물면 된다는 누군가의 말만 믿고 아내는 욕심껏 짐을 꾸렸다. 다 소용에 닿는 것들이겠지 싶어서 나도 그 말만 믿고 이것저것 보태기까지 했다. 가방 하나에 허용되는 무게가 23kg, 아닌게 아니라 33kg까지는 돈만 더 물면 된다고 하는데 두 가방에 채운 짐이 무려 각각 45kg, 48kg씩이다. 부랴부랴 가방을 하나 더 사서 대충 덜어내고 나서야 간신히 두 가방이 검색대를 통과했다. 새로 산 가방에 무게를 덜어내면서 몇 차례씩 저울 눈금을 헤아리느라 병초 이마에 땀이 번질거린다. 새벽부터 인천공항에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병초 아니었더라면 나와 아내는 아마 꼼짝없이 비행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로 채운 25kg도 넘는 새 가방은 이제 최종 목적지까지 나와 아내가 끌고다녀야 한다. 카메라 가방과 노트북 가방을 하나씩 둘러맨 나와 아내에게 새로 끌고다닐 그 무게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어설픈 기내식보다도 따뜻한 국물로 먼저 요기를 해야 된다면서 병초가 우리 내외를 공항4층에 있는 식당으로 끌고 간다. 한 그릇에 만 육천 원도 넘는 공항의 꼬리곰탕은 삼례 온천식당에서 먹던 구천 원짜리 꼬리곰탕보다 맛이 엄청 모자란다. 외손자 광호 남호 형제를 데리고 뒤늦게 환송 나온 이경이, 십원 한 장에도 벌벌 떨며 사는 구두쇠 딸아이가 꼬리곰탕 값을 치루긴 했지만 엄청 딸리는 꼬리곰탕 맛을, 기어이 더운 국물을 먹여 보내려는 병초의 정으로 채운다. 손자 경민이를 데리고 뒤늦게 나타난 며느리보다 새로 개업한 구멍가게 병원 일에 매달려 명절에도 휴일에도 오도가도  못하는 아들녀석이 못내 안타깝다.

  인천에서 떠난 지 한 시간 사십 분만에 지난(濟南) 공항에 왔다. 새로 꾸린 가방을 뻘뻘뻘 땀 흘리면서 질질질 끌고 다녔다. 날씨는 유난히 덥고 입은 옷은 겹겹이 두텁고, 옷을 벗어 팔에 걸치면 질질 흘러내리고, 팔 다리 허리가 모두 뻐근뼈근하다. 지난 공항에서는 산동사범대학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나온 그 학교 직원들이 살갑고 친절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상대방에게는 한참 답답했겠지만 어떻게 어뗳게 어렵사리 뜻이 통하면 서로 마주보고 웃는 그 재미가 나로서는 쏠쏠했다. 무슨 귀양살이라도 떠나온 듯싶은 울적함이 내내 나를 압도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일 년 동안 나는 이런 답답함을 특별한 낙으로 여길 작정이다.
  가까스로 짐을 푼 곳은 학생들 기숙사 옆에 있는 이층집, 이 학교 외국인 교수들이 쓰던 집이라고 한다. 4 평쯤 되는 침실, 6 평쯤 되는 응접실, 화장실 3평쯤, 주방 2 평쯤, 통로 3평쯤 되는 공간이 나와 아내 몫이다. 응접실과 침실과 통로에는 녹색 카페트가 깔여 있고 세탁기 냉장고 침대 붙박이 온풍기와 냉풍기가 두개씩, 그리고 긴 쇼파 하나 안락의자 두개 책상 두 개 접이식 철제의자 세 개 나무의자 한 개 등등이 준비되어 있다. 길 건너편에 있다는 새로 지은 학교 호텔에 숙소를 정할가 했는데 거기보다 여기가 좀 넓고 편하실 듯싶어 우선 이쪽으로 모셔보았노라고, 다음 주중에 호텔에 가본 뒤에 그곳이 맘에 드시면 거처를 옮겨도 좋다는 이 학교 직원의 안내가 정중하다. 아무런들 어떠랴, 나는 우선 짐을 풀게 된 것만 다행스럽다.
  지난시에는 거리거리마다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이 드글드글하다. 사람들 못지않게 차량들도 드글드글한데, 차도 사람도 서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게 참으로 이상하고 아슬아슬하다. 신호등의 파란색 빨깐색을 차도 사람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길을 건너다니고 차들도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유턴도 하고 네거리를 지나다니곤 한다. 지옥 같기도 하고 천국 같기도 하다.
  이곳까지 질질질 끌고 온 내 무거운 짐들을 생각한다. 나를 이곳에 보내주신 분들, 이곳에서 내가 해야 될 일들, 나를 환송해주신 우리 과 교수님들과 금요회 친지들과 별천지 가족들, 작가회의 회원들, 석정문학회 여러분들, 우리 내외가 이곳까지 끌고 온 이런저런 짐들이 비록 버거울지라도 나는 그 짐들을 기꺼이 챙기려 벼르고 있다.
  이곳 전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수화기를 들고 적어 온 숫자를 누르면 못 알아듣는 말들이 콩 튀듯 쏟아진다. 그 콩 튀듯 쏟아지는 말들 때문에 아직 아무 데도 전화를 못하고 있다. 전화도 못하는 산동의 첫날밤에 봄비가 온다. 삐봄삐봄 하면서 내릴 전주의 봄비가 궁금하다. 나를 울려주는 삐봄, 언제까지 내리려나 삐봄삐봄삐......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듯 이따금씩 천둥소리도 섞이어 봄비에 젖는 내 짐들이 더 무겁다.

[2006-12-01 16:29:5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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