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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7 근시적 넌센스. 신희교 선생께 2004-03-23 04:50
작성자 : 鄭洋 




근시적 넌센스

신희교 선생께

  남도에 산수유가 피기 시작했다면서요? 여기는 봄꽃들이 거의 시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핀 꽃들이 그렇게 쉽게 시든다는 건 참 슬픈 일이군요. 오늘은 지난번 내가 썼던 글 중에 몇 가지 잘못이 있어서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먼저 꽃에 관한 건데, 이곳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지난번 했던 말은 사실과 너무 다릅니다. 내가 벚꽃으로 오해했던 그 꽃은 외관상 그 나무줄기며 꽃 모양새가 얼핏 벚꽃과 비슷하긴 해도 사실은 한참 다른 꽃이었습니다. 그 심한 바람 속에서도 꽃잎이 끝까지 매달려 있는 점, 그리고 그 향기가 숨이 막히도록 짙다는 점이 특히 벚꽃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 꽃잎도 한국의 벚꽃에 비하여 약간 짧은 편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꽃이냐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몇 차례 물었는데, 한국말이 간신히 통하는 이곳 학생이든 선생이든 그 꽃나무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곳 시가지 곳곳에 가로수로 혹은 정원수로 피어 있는 벚꽃 닮은 그 꽃 이름을 아는 이가 이처럼 드문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은 꽃 이름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곳에서 아주 흔한 봄꽃 중의 하나일 뿐인데 그런 걸 구태여 궁금하게 여기는 나를 약간 이상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나는 아직 벚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한 가지 바로잡을 점은 이곳 지난시가 마치 배산 하나 끼고 있는 익산시처럼, 천불산이라는 산 하나 끼고 허허벌판 속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곳의 내  행동반경이 좁기도 했고, 또 황사가 노상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내 시야가 그렇게 한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파악하는 근시적 넌센스지요. 허허벌판 속에 있는 도시라는 말은 물론 맞지만 이곳 지난시에는 천불산 말고도 그와 비슷한 규모의 산이 서너 개쯤 더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며칠 동안 갈비뼈 바로 아래쪽이 바늘로 찌르듯 꼭꼭꼭 쑤셔서 꼼작 못하고 지내다가 오늘은 학교 안에 있는 병원에 다녀와서 몸이 약간 풀렸습니다. 외과의, 내과의들이 번갈아 내 몸 여기저기를 꾹꾹꾹 찔러보곤 했습니다. 심각한 병은 아니라고, 감기 뒤끝에 어쩌다 올 수 있는 체내 염증 때문이라고, 한 일주일 더 지나면 거뜬해질 거라고 합니다.  

  북경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며칠 미루고 갈비뼈보다 맘이 좀 가벼워져서 오늘 오후에는 택시로 이곳 문화시장이라는 데를 가 보았습니다. 서울 인사동쯤 되겠거니 여겼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그 규모나 내용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욕심나는 온갖 골동품, 온갖 출토품, 기기묘묘한 수석들, 서화작품들, 문방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들이 여기저기 길가에도 집안에도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그 값만 물어보다가 한나절이 다 갔습니다. 값도 천차만별입니다. 그 값을 팍팍 깎아야 할 물건들과 조금씩만 깎아야 할 물건들을 내 나름으로 대충 짐작만 해두었습니다. 그곳에 자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밤에는 여기 학생들 다섯이 내 문병을 다녀갔습니다. 걔네들 통해서 이제서야 내 방에 국제전화선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나는 참 바보처럼 사는군요. 안녕히 계세요. 또 연락 드리지요. 총총.


-2004-03-23 04:50에 쓴글-


[2006-12-01 16:33:1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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