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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현리 시> 옛날옛적에 (2003. 3.19)
작성자 : 鄭洋 


<馬峴里詩>
  옛날에 옛날에

  이른봄 1

  겨우내 노름판에다
  나락 열 섬 날려먹고
  속이 터지는 만석이는
  그 속 차리느라 고개 숙이고
  새벽마다 고샅길 개똥을 줍는다

  미나리꽝에서 건진
  젖은 개똥 속에는
  막 돋아난 미나리싹도 묻어 있다

  이른봄 2

  노내깃날 콩 볶아먹고
  볶은 콩도 몇 움큼 괴춤에 넣고
  고추밭에 똥 내러 간 상수네 아버지는
  비둘기 털 흩어진 고추밭머리
  똥 냄새 큼큼거리며 콩을 씹는다
  
  
  세번째 얻은 각씨도 며칠만에 달아난
  허구헌 날 방구석에 자빠져서
  용개나 친다는 홀애비 용길이는
  일하기가 죽기보다 싫어
  한해 농삿일 시직되는 그
  똥내를 큼큼거리며
  차라리 목매달러 산으로 간다
  죽기도 죽어라 싫어서
  다 삭은 새끼줄  
  두어 발 새려들고 산으로 간다


  이른봄 3

  무르팍이 귀를 넘는
  순덕이네 할아버지는
  이름을 모른다고 한다
  나이도 모른다고 한다
  누가 말만 걸어도 무조건
  모른다고만 한다

  한나절 내내 햇살 곰실거리는
  마늘밭 울타리 아래
  겉옷만 걸친 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노망난 이를 잡는다  
  
  누렇게 찌든 난닝구
  구멍난 겨드랑이께를 돌돌 말아서
  두어 개 남은 어금니로 잘근잘근
  토독토도독 토도독토독
  이 죽는 소리를 깨물고 있다

  울타리 너머 돋아나는 마늘싹들이
  이 죽는 소리에 귀를 세운다  
  
        

  진용이네 정월대보름

  누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면 안 되는 날,
  깜박 잊고 대답하면 냉큼 "내더우"를 당하는 날,
  "내더우"를 당하면 "니더우 내더우 팥더우"로
  곧바로 맞받아야 한 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날,
  정월 대보름날에는 애나 어른이나 달 뜨기 전에
  오곡밥 아홉 번 먹고 아홉 번 넘게
  더위를 팔아먹어야 여름 더위를 안 먹는다.

  밥소쿠리 하나씩 들고 아이들은 집집마다 밥 동냥을 다니면서 "니더우 내더우 팥더우"를 다투어 주고받으면서 여름 더위를 미리 미리 팔아먹는다. 봄도 오기 전에 여름 더위부터 걱정되는 사람살이가 심란하거나 말거나 밥도 얻어먹고 낄낄거리며 더위도 팔아먹는 재미가 아이들에게는 하루 내내 오지다.
  
  두 동생 먹여 살리는 동냥아치 진용이도
  이날 하루는 당당하게 밥 동냥을 다닌다.
  집집마다 밥 안 주는 집이 없는 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밥 달라고 맘놓고 왜장칠 수 있는 날,
  누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큰소리로
  몇 번씩 대답해주는 날,
  
  누가 더위를 팔더라도 진용이는 맞받는 일이 없다. 더위쯤이야 먹든 말든 그냥 대답만 몇 번씩하면서 싱글싱글 웃으면 된다. 싱글거리는 진용이의 보름날 발걸음은 유난히 바쁘다. 소쿠리에 밥이 넘치면 움막에 있는 광주리에 비우고 냉큼 빈 소쿠리를 들고 다시 나선다.

  보름날 얻은 밥으로 진용이네는
  잘하면 한 달은 견딘다고,
  정월대보름날은 진용이네 날이라고
  진용이를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        


  꽃각씨 할머니

  가마 타고 시집 온 최면장집 둘째 며느리
  곱기가 꼭 선녀 같았다
  아이들은 그녀를 꽃각씨라고 불렀다
  꽃각씨가 먼발치에서 보이면 아이들은
  시집올 때 가마 속에서 방귀 뀐 아줌마라고
  다투어 흉을 보며 키득거렸다
  동네 아낙들이 괜히 샘통이 나서 퍼뜨린
  헛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꽃각씨 아줌마가 보일 때마다 멀리서
  손가락질들을 해가며 키득거렸다

  그 꽃각씨 아줌마 곱게 늙어서
  허옇게 할머니 되어 있는 어느 저녁나절
  서울 가서 돈벌이 잘한다는 우성이가,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거나하게 취한 우성이가
  방앗간 앞에서 꽃각씨 할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하이고 이게 누구대여, 우성이 아녀? 몰라보겄구마잉,
  하이고 꽃각씨 아주머니, 아직도 영 고우시네요잉
  이따가 시간 나면 와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랑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정하게 손도 잡고
  서로 어깨도 다독이다가 헤어지는데

  헤어지다 말고 우성이가 저만치 가고 있는
  꽃각씨 할머니를 다시 불러 세웠더란다 옛날에
  가마 속에서 방귀 뀐 게 사실이냐고, 술기운에
  그게 갑자기 궁금해서 물었더란다

  꽃각씨 할머니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한참이나 말없이 우성이를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려 탱자나무 울타리를 끼고
  잰걸음으로 총총총 가버렸다고
  낯 붉히는 걸로 보면 방귀를 뀌기는 뀌었는갑다고
  아무리 술기운이지만 괜한 걸 물었는갑다고
  이 노릇을 어쩌면 좋으냐고
  번쩍거리는 자가용 시동을 걸어놓은 채
  우성이는 차마 마을을 못 떠나고 있다



  주막집 내외

  주막집 욕쟁이 할머니는
  씨 다른 아들딸들 다 여워서 내보내고  
  영감 구박하고 흉보는 게 일이다

  낯선 술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저 작것이 내가 여섯 번째 얻은 서방인디
  그 중 제일로 못났다고
  사내 구실 못한 지가 옛날이라고
  지 갈 길도 모르는지 맨날
  오도 가도 않고 저렇게 쭈그리고 산다고
  손가락질도 곁들이면서 할머니는
  신바람나게 남편 소개를 한다

  할머니가 술청에서 술을 팔든
  술손님과 수작을 하든 흉을 보든 말든
  귀가 꽉 막힌 할아버지는 세상일
  안 들어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술청 건너편 툇마루에 멍하니 걸터앉아
  한나절 내내 앞산 너머
  먼 하늘만 바라본다

  산마루에 비껴가는 새털구름이
  한세상 오고 가는 길 헤아리고 있다



  이서댁네 고지먹기

  고지 한 몫이 쌀 한 말, 겨울에 고지 한 몫 먹으면 이듬해 농사철에 닷새 일을 해야 한다. 고지먹은 일 제 때에 못한 일꾼은 이듬해부터는 그 마을에서 고지도 못 얻어먹는 게 농가의 불문률이다.

  
  아낙들이 아직은 까맣게 모르지만
  언젠가는 들통나고 말겠지만  
  이 마을 일꾼들에게는 은밀한
  불문률 하나가 더 있다
  말수 적고 살비듬 고운 과부댁,
  이서댁네와 잠자리를 한 번 하면
  그게 바로 고지 한 몫 먹는 것이다

  이서댁네 일해주는 남정네들끼리는
  서로 구멍동서라고 부른다 구멍동서들이
  일철이 되어 이서댁네 시루배미에 모이면
  농담 반 진담 반
  너는 고지 몇 몫 먹었냐고 서로
  눈을 꿈적거리며 묻는 것이 인사다

  새로 구멍동서 된 상배네 아버지는
  세 번 잤는데 이서댁이 두 번은
  감해주었다고, 한 몫만 일 해주면 된다고
  눈치도 없이 연신 싱글거린다    
  강그라진 잠자리는 그렇게 감해주는갑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묵은 동서들도 피식피식 웃어댄다


  상학이 방구는 줄방구

  상학이의 방귀는 동네뿐만 아니라
  5학년 1반만 아니라
  우리 학교 전교생이 다 알아준다
  상학이가 방귀 뀌는 걸 보고
  담임선생님도 놀란 얼굴을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며 몇 번이나
  올림픽 금메달 깜이라고 했었다

  뭘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 때나
  상학이만 보면 방구 좀 뀌어보라고  
  무턱대고 졸라대지만
  사정을 좀 아는 아이들은
  상학이 낯빛이 치잣물에 적신 것처럼
  노랗게 질릴 때를 기다린다

  어쩌다 한번씩 은행나무 밑에서
  상학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엉덩이를 까고 방귀를 뀐다
  한꺼번에 힘을 모아 큰 소리로 터뜨리는
  그런 예사 방귀가 아니다
  두 손으로 오르락내리락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무릎은
  엉거주춤 오므리고

  엉덩이와 오금쟁이와 뱃살과 똥구멍을
  골고루 힘을 나누어 자디잘게 움짓거리면
  품 넓은 은행나무 그늘 속에는
  염소똥 같은 자디잔 방귀총소리가
  번번이 백방도 넘게 이어지는 것이다
  곁에서 상학이를 흉내내던 복철이는
  스무 방도 못 넘기고 쌩똥을 싸버린 적도 있다

  은행나무 잎들도 방구총소리에 숨을 죽인다            
  야든 일곱 야든 야달 야든 아홉···
  방귀총소리에 맞추어
  숨죽여 수를 세는 아이들 목소리가
  백방을 넘기면서 점점 커지다가
  방귀소리 놓칠까봐 다시 숨을 꺾는다
  조용히 좀 하라고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입술을 두드리면서
  상학이 엉덩이 근처에
  바짝 귀를 들이미는 아이들도 있다

  백 아홉, 백 열, 백 열 하나, 백 열 둘

  상학이가 무릎 펴고 허리 펴고 바지춤을 올린다
  우와아 신기록이다  
  백 열 둘 백 열 둘 백 열 둘
  아이들 함성에 은행나무 잎들이 화들짝 놀란다
  샛노랗던 상학이 얼굴에 어느새 화색이 돈다
  점점 커지는 아이들 목소리가 합창으로 바뀐다

  상학이 똥은 맴생이똥 상학이 방구는 줄방구
  상학이 똥은 맴생이똥 백방도 넘는 줄방구
  상학이 방구는 줄방구 올림픽 금메달깜 줄방구

[2006-12-01 15:59:4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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