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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피 (2003.4.7)
작성자 : 鄭洋 


호랑이 피

  떡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넘을 때마다 영낙없이 나타나서
  떡 한 조각만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떡을 다 빼앗긴 아주머니는 고갯길마다 영낙없이 나타나는 호랑이의 요구대로
  저고리도 벗어주고 치마도 벗어주고 속곳도  다 벗어줍니다.
  알몸이 된 아주머니는 보나마나 성폭행도 당했겠지요.
  팔뚝도 하나씩 떼어주고 젖퉁이도 하나씩 떼어주고 두 다리도 떼어줍니다.
  그 호랑이는 마침내 아주머니를 잡아먹고 맙니다. 이야기는 더 이어져서
  호랑이는 그 아주머니의 아들 딸들까지 잡아먹으려고 갖은 잔꾀를 다 부리다가
  결국은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수수밭에 떨어지면서
  수숫대에 똥구멍을 찔리어 죽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모든 수숫대들은
  그 호랑이피를 먹고 빨갛게 물들었다는 대목에서 이야기가 끝나지요? 아마.
  
  나만 보면 옛날에 옛날에를 해달라고 조르는,
  간신히 기억해낸 옛날 얘기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해달라고 졸라대는,
  '잘 먹고 잘 살았더란다' 를 어쩌다 빼먹기라도 하면 영낙없이 그 대목을
  보충해주기까지 하면서 밤 깊도록 잠도 없이 끝도 없이
  옛날에 옛날에를 졸라대는 네살박이 손자녀석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옛날 얘기가 바로 이 호랑이 피 얘깁니다.
  이심전심인지 이 얘기가 시작되면 녀석은 잠들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떡 한 조각만 주면 너 안 잡아먹지 어흥,'
  이 대목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사이에
  녀석은 마침내 잠이 들곤 하기 때문에
  이 얘기를 끝까지 해준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녀석이 잠들고 난 뒤에 나는 혼자 남아서 그 호랑이를 생각합니다.
  지금도 지상의 모든 고갯길 길목을 지키다가 아무에게나
  그 떡부터 내놓으라고 졸라대는 호랑이, 어떤 이들은 아직도
  철석같이 고맙게만 여기고 있는 그 호랑이 말입니다.
  콜라 사주면 안 잡아먹지, 햄버거 사주면 안 잡아먹지,
  팬텀기 사주면 미사일 사주면 이지스함 사주면 스텔스 사주면
  이라크 파병하면 안 잡아먹지.
  무기사찰 받으면 안 잡아먹지. 핵 개발 안 하면 대량살상무기 없으면
  무장해제만 하면 자살테러만 안 하면 후세인만 죽으면
  정권만 내놓으면 이슬람만 안 믿으면 안 잡아먹지........

  한도 끝도 없이 안 잡아먹겠다고 졸라대는 그 호랑이에게
  알라든 예수든 부처든 가리지 말고
  누가 좀 썩은 동아줄 좀 빨리 좀 내려주면 좋겠습니다.
  

[2006-12-01 16:01:2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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