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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1....담배 피우러 북에 간 것처럼 (2003.10.27)
작성자 : 鄭洋 


가깝고도 먼 북녘 1

    1 담배 피우러 북에 간 것처럼

   작고하신 소설가 황순원 선생이 남긴 글에 금연에 관한 시가 있다. 시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개가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해준 신문기사를 읽고 동화가 실현되었구나 싶은 그 감동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이튿날 그 기사가 오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다시 담배 한 대를 더 피웠노라는 내용의 시다. 담배 두 까치로 시 한 편을 쓰신 셈이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북한 땅들

   나는 지금 담배를 입에 문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두 달쯤 담배를 잘 참고 지내다가(술자리 같은 데서 드문드문 피우기는 했지만) 평양행 수속을 밟으면서부터, 아니 평양에 가게 될 것 같은 얘기가 오가면서부터 일말의 미련도 뉘우침도 없이 틈만 나면 줄곧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수유리 통일교육원 방북교육을 받던 강당 밖에서 터미널에서 공항에서 만경대에서 소년궁전에서 버스 뒤에서 호텔에서 묘향산에서 김일성, 김정일 기념품전시관에서 기념품상점에서 김일성 동상들 앞에서 개선문에서 주체탑 옆에서 김일성대학 정문에서 그 대학 난간에서 삼지연 고려항공 비행기 옆에서 화장실에서 영접실에서 백두산 정상에서 김정일 생가에서 동명왕릉 앞에서 정릉사 안에서 단군능에서 대동강 유람선 안에서 보통문 안에서 연광정 난간에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옥류관에서 단고기집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남북청년학생들 만남의 모임에서 식탁에서 술집에서 서해갑문 바닷가에서 반갑다고 다시 만나자고 손을 흔들면서··· 무슨 담배를 그렇게 아무 때 아무 데서나 피워댔느냐고 누가 나무라실지 모르지만 여기 적힌 것들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마치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북에 간 것처럼 목에 감긴 감기기운쯤 마음 쓸 틈도 없이 마구마구 피워댔다.




평양 순안 비행장과 답사단 일행들


   혹시라도 못 가게 되면 어쩌나 싶은 쓰잘 데 없는 걱정 때문에 피웠고 북녘을 누비게 된 감격 때문에 피웠고 짧은 기간 동안에 보고 겪은 북녘의 실상들이 나에게 안겨주는 충격과 고통 때문에 피워댔다. 우리가 겪는 이 민족적 야만을, 이 노릇을 정말 어쩌면 좋으냐 싶은 걱정 때문에, 전주에 가면 다시 담배를 참아야지 단단히 벼르던 결심도 저만큼 잊어버리고 있다. 40여 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 요즘처럼 적극적으로 담배를 피운 적은 없다. 북녘의 따가운 가을햇살에 그슬린 내 얼굴이 담배 때문은 아닐까 문득문득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며칠 동안 가까스로 참아주던 감기기운이 전주에 오자마자 다시 도진다. 팔 다리가 뻐근뻐근 나른나른하다. 자기를 잊고 지내면 안 된다고 감기가 누구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2006-12-01 16:06:5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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