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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2 똘밤똘밤한 소설가 (2003.11.25)
작성자 : 鄭洋 


  2 똘밤똘밤한 소설가

  당신은 매사에 엄벙하고 어리숙해서 걱정인데 이참에 이병천 선생과 같이 가게 돼서 좀 마음이 놓인다고, 매사에 똘밤똘밤한 이병천 선생만 줄곧 따라다니라고 아내는 몇 차례나 못을 박는다. 똘밤똘밤이 아니고 똘방똘방이라고 고쳐주면서 나도 몇 차례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몇 차례나 끄덕이긴 했지만 내가 아는 소설가 이병천은 똘방도 똘밤도 전혀 아니다. 그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한 생각들을 일용할 양식처럼 끄리고 사는 사람이다. 아내의 당부를 전해듣고 소설가 이병천은 사모님은 역시 혜안을 가지셨다고 기고만장이다. 정말로 똘밤똘밤한 사람은 이런 경우 결코 기고만장하지 않을 것이다.


똘밤똘밤한 이병천 소설가와 함께


똘밤똘밤한 이병천 연출가 선생과 백두산 천지에서 도시락 먹는 장면.

  북녘땅에 닿자마자 이참에 우리가 망명선언을 하면 어떻겠냐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 이병천 선생이 자다 말고 이죽거린다. 역시 똘밤똘밤하다고, 똘방똘방이 맞다고, 그래도 똘밤똘밤이 더 맘에 든다고 남들 잠 깰새라 키득키득 수군거리는 동안 망명을 할 테면 하라는 듯이 리무진은 동이 트는 인천공항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북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무슨 선물, 남쪽의 담배라도 좀 넉넉하게 준비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 갑씩 돌리자는 내 의견을 듣고 이병천은 공항 안 면세점에서 사면 밖에서 사는 것보다 덜 번거롭고 값도 싸다고 한다. 역시 이병천 선생은 똘밤똘밤한가 여기면서 공항 안 면세점에 들어섰다.
  걱정이 하나 있었다. 한글 이름의 담배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사슴, 백양, 진달래, 파랑새, 신탄진, 한강 등등 옛날 담배이름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즌, 레죵, 타임, 에쎄, 디스, 리치 같은 이름의 담배를 이게 남쪽 담배라고 북쪽 사람들에게 꺼내주기가 좀 민망할 것만 같았다. 한글 이름의 담배가 생각나지 않아서 잠깐 난처했지만 이내 난처해질 필요가 없어졌다. 면세점 안에서 우리는 담배를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양은 국외가 아니고 국내이기 때문에 평양행 비행기표를 가진 사람들은 면세점 물건을 아무것도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순안 비행장 비행기 안에서 본 북한 풍경들

  똘밤똘밤한 이병천 선생도 하릴없이 이게 무슨 경우냐고 면세점 점원에게 낯만 붉히다 만다. 담배도 못 사고 맨손으로 평양가는 비행기에 오르긴 했지만, 똘밤똘밤한 이병천 선생의 낯붉히던 모습이 비행기 안에서 내내 고소하다.

[2006-12-01 16:15:0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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