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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3 담배 참기엔 너무 긴 시간 (2003.11.25)
작성자 : 鄭洋 


3 담배 참기엔 너무 긴 시간

인천서 평양 가는 대한항공 전세기는 우리 일행을 태우고 서해쪽으로 빠진다. 인천서 평양까지 곧바로 가로질러 가는 게 아니고 일단 서해바다쪽으로 빠져서 북으로 올라가다가 바다에서 평양쪽으로 들어간다. 내 좌석은 이등석 맨 앞줄 창가에 있고 이병천 피디는 삼등석이다. 그까짓 좌석쯤 아무러면 어떠랴 싶은데 행사 집행부측 젊은이들(전대협동우회 회원들)이 자나치다가 일부러 다가와서는 제대로 신경 못 써드려서 죄송하다고 헛인사들을 해쌓는 바람에 그 쓰잘 데 없는 좌석배정에 더러 신경이 쓰인다.
  정상적인 좌석배정이라면 나이로 보나 키로 보나 내가 일등석일 텐데, 키 같은 게 기준이 못 되더라도 나나 이병천 피디는 당연히 1등석에 있어야 할 텐데 뭔가 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일등석에는 한완상 단장과  국회의원들(송영길, 임종석 등) 그리고 집행부 젊은이들이 타고 있다. 아마도 임원진과 집행부 젊은이들끼리 우리들의 일정에 대해서 긴밀하게 나눌 얘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병천 피디와 떨어져서 서로 말 한 마디 못 나누고 평양으로 가고 있는 것이 오로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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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안에서 내려다 본 이북 땅, 논밭들도 보이고  집들도 보입니다.

  바닷길이 열리고 기차길이 열리고 버스길이 열리고 이제 하늘길도 열렸다는 사실 때문에 비행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슴이 조금씩 더 콩닥거린다. 해방도 되기 전(1945년 8월 10일) 미국이 그어놓은 삼팔선 때문에 미군과 소련군에게 분할점령을 당했던 한반도, 거의 60년 가까이 맘놓고 오가지 못했던 막힌 길들이 이제 눈꼽만큼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삼팔선도 휴전선도 비무장지대도 이 비행기는 눈을 뜬 채로 훌쩍 건너왔을 것이다. 그렇게 열린 길들 위에 민족의 마음길도 정말 깔릴 것인가.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 땅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평양으로 다가간다. 가슴이 더 콩닥거린다. 연안의 짙푸른 바다와 누렇게 출렁이는 들판의 황금물결과 푸른 산들이 다가온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집들도 보인다. 옹기종기 오밀조밀한 집들이 아니라 울타리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병영의 막사들 같다. 비행기 아래 여기 저기 보이는 바둑판 같은 그 집들이 자꾸 삭막해 보인다. 콩닥거리던 가슴이 서늘하게 식으면서 인천에서 떠난 지 불과 50분만에 비행기는 평양 외곽의 순안공항에 닿았다.


  북한 상공에서 본 북한 해안가

  공항 옆 개천에서는 윗옷을 벗어재낀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지나치는 눈길이어서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개천의 일부를 막고 물을 품어서 고기를 잡는 게 아닌가 여겨졌다. 공항 주변의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뚝방길로 부인인 듯 보이는 여자를 뒤에 태운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가 우리가 탄 대한항공 쪽으로 손을 흔들다 비틀거리더니, 자전거를 세우고 여자와 함께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북한 풍경들
  
  애초에 나는 걸어가지는 못할지라도 몇 시간이 걸리든 버스를 타고 북에 가게 되기를 바랐었다. 북녘의 산천에 대한 오랜 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오만원이라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인천에서 평양까지 비행기로 50분, 참으로 허망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선 담배부터 피우고 싶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한 손에 일회용 라이터를 들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허망한 50분일지라도 담배를 참기에는 너무 길었다. 여기 저기 건물 벽이나 옥상 등 눈길 닿을 만한 곳마다 붉은 구호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구호의 나라에 들어섰다.

[2006-12-01 16:16:2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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