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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5 방랑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2003.11.25)
작성자 : 鄭洋 


5 첫나들이
  
  방랑,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어린이는 왕이다"라는 말은 아마 김일성 주석의 어록쯤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 김일성 주석이 어린이를 위하여 지었다는 집, 어른이 양팔을 벌려 어린이를 껴안고 있는 듯한 구조의 이 건물이 바로 그 유명한 소년궁전인지, 아니면 소년궁전은 또 따로 있는지, 담배 피우고 셔터 눌러주고 하는 동안에 일행들은 저만치 물빛 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여성 안내원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차비를 하고 있다. 이 건물이 소년궁전이든 아니든 그런 것이 나에겐 별로 궁금하지 않다.  


소년궁전

  연출가 선생님 사진 담에 찍고 날래 따라갑시다. 우리 주변에서 머뭇거리던 또 다른 안내원 선생이 우리를 채근한다. 사진 찍으랴 담배 피우랴 위생실(화장실) 찾아가랴 일행들 따라가랴, 전주에서 새벽 3시 차를 타려고 밤을 새운 이병천 연출가선생과 나는 몸이 바쁘다. 흙탕물 속에서 살다가 이따금씩 주둥이를 물 밖에 내놓고 뻐끔거리는 붕어들처럼 연출가 선생과 나는 틈만 나면 담배를 피웠다. 우리가 일행과 좀 떨어져서 딴전을 피우노라면 안내원 선생 하나가 반드시 우리 주변에서 머뭇거리다가 어영부영 다가와 갈길을 채근하곤 했다.

  이 글을 읽다 말고 안도현 시인은 해지는 집에 찾아와서 '정양의 북한 방랑기'라는 흔적을 남겼던데, 흙탕물 속 같은 이 이동식 가두리를 ''방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죽거리며 미화시키고 있던데, 우리보다 앞서 평양에 다녀왔던 안도현 시인이 이 가두리를 모를 리가 없다. 방랑, 정말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가는 곳마다 담배를 뻐끔거리며 우리는 방랑이 그리운 이 흙탕물 속에서 온몸을 뒤틀며 퍼득거리고 싶었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건물 안에는 좌우로 일백 몇십 개의 크고 작은 교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왼쪽이 과학관, 오른쪽이 예능관이라고 한다. 나라 안의 재주 있는 어린이들이 분야별로 나뉘어 재주를 연마하는 학습장들이다. 여성 안내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일행은 그 학습장들을 방마다 기웃거렸다. 기웃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더러 박수를 쳐주기도 하면서 일행들은 칸칸이 돌아다녔다. 어린이들은 자기 일에 매달려 우리들에게 별로 눈길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 붓글씨 쓰는 아이들, 수틀에 매달려 수를 놓거나 악기를 다루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무슨 모형 만들기에 여념이 없거나 각종 체조나 춤을 추는 등등의 아이들 곁을 지나치면서 나는 그 아이들에게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이들의 집중력에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내 옆에 붙어다니는 안내원 선생에게 걱정을 했더니, 아닙네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긴장이 돼서 높은 집중력이 생길 겁네다. 걱정 마시라고 안내원 선생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준다. 나는 맘 속에 괄호 하나를 열고 녀석에게 얼른 감자 하나를 먹였다. 요놈이나 먹어라 이 새끼야. 그리고 서둘러 괄호를 닫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그렇게 몇 층쯤 더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기억이 없다. 우리는 그 건물 안에 있는 커다란 원형극장에 들어갔다. 우리 문화유적 답사단을 환영하는 어린이들의 공연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 핏줄도 하나 역사도 하나 언어도 하나 둘이 되면 못살 하나 노래를 부르는 관중들이 극장 안에  가득하다. 평양의 대학생들 같았다. 검정치마 흰 저고리의 여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노래부르며 우리를 환영했다. 다른 쪽은 조명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이고 노래소리만 들렸다. 극장에 들어서는 우리 일행들도 그 노래를 합창하면서 안내된 좌석에 앉았다.      
    
  관중석의 노래소리가 그치고 어린이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춤이며 노래며 악기솜씨며 모두 깜직하고 예뻐보인다. 남쪽에 와서 공연하던 낯익은 꼬마들의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 장구치는 꼬마는 키며 생김새며가 꼭 여덟살짜리 내 둘째 외손자 남호녀석 같다. 장구치는 꼬마의 익살맞은 표정과, 장구솜씨에 관객들이 열광한다. 어린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눈물을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공연이 끝나고 만경대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내가 쏟은 눈물을 나는 스스로 설명할 길이 없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들이 슬퍼보여서? 꿈을 꾸는 것 같아서? 어쩌면, 저토록 귀여운 아이들이 겪어야 할 우리의 야만 탓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모르겠다.



  만경대에서도 우리는 위대한 수령, 위대한 주체사상,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을 수없이 수없이 듣고 보다가 어둑어둑해진 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있는 꼬마들만 보아도 또 눈물이 쏟아지려고 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청년동맹에서 남조선 청년학생 문화유적 답사단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환영만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6-12-01 16:18:3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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