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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북녘 6 잃어버린 페리칸, 잃어버린 시집 (2005.11.27)
작성자 : 鄭洋 


잃어버린 페리칸, 잃어버린 시집

  나로서는 맘먹고 기다리던 만찬이었다. 북에 오기 전에 나는 한국전쟁 직전 월북했던 시조시인 조운 선생의 유족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이쪽 민화협(민족화합협의회?)을 통해서 그쪽 민화협쪽에 전했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도 어려울 거라는 그쪽의 입장을 전해듣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안 버리고 있었다.

  순안공항에서 앞장서서 비행기를 내렸던 이들은 곧바로 공항 영빈실로 안내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를 환영나온 사회주의 청년동맹 단장선생(이름은 기억나지 않음)에게 내 희망사항을 상의해 보았다. 조운선생이 내 이모부라는 점, 아드님들 이름이 조홍제 조청제 라는 점, 나이는 70대 중반일 것이라는 점 등등을 말했다. 자기는 미리 연락 받지 못한 일이라고,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며 수행원인 듯한 사람을 불러 뭔가를 묻고 지시하는 것 같더니 단장선생이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이따가 저녁 만찬 때 장혜명(해명?) 시인이 참석하도록 되어 있으니 그 때 그분과 '구테뎍'으로 상의해보라고 한다.
  
    
만경대 생가에서 우리조 학생들과 함께...

  장혜명 시인이 원래 만찬 때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는지 내 얘기를 듣고 단장선생이 따로 참석을 요청했는지는 나로서는 궁금한 일이 아니었다. 장혜명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북의 문인을 만나게 되면 할 말이 많아질 것 같고, 내 일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리라 싶어서 마음이 미리 든든했다. 내 요구를 진지하게 대해주는 단장선생이 고마웠다. 어려서 같이 살던 이종형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 접어두었던 희망사항에도 새삼 살이 올랐다. 김일성주석이 아끼던, 북쪽 문단의 큰 별이었다던 조운 선생, 유족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소식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리고 조운선생에 대한 자료들을 구하는 것쯤은 매우 간단한 일로만 여겨졌다. 내가 썼던 조운선생에 관한 글(이슬의 꿈과 탱자의 꿈)의 속편도 쉽게 완성될 것만 같았다. 평양 첫날밤의 부풀었던 그 만찬이 시작되었다.

  정장차림으로 메인 테이블에 앉으라는 부탁을 사양하고 그 건너편 식탁에 앉았다. 정장차림을 준비해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구나 싶었다. 누가 뭐라고 환영사를 하고 답사를 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호텔 3층에 있는 만찬장 주변에는 한복을 곱게 입은 북한 여성들이 빙 둘러 서 있고, 역시 한복을 곱게 입은 접대원 선생들이 식탁 사이사이에서 술과 음식을 나누어주곤 했다.


만찬장 풍경

  식탁에는 남측 사람들과 북측 사람들이 섞여 앉아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박수를 치며 그 때마다 조국통일을 앞당기자며 건배를 했다. 술잔을 입에 댔다가 뗄 때마다 나는 조금씩 술을 마시곤 했는데, 잔을 내려 놓으면 이내 접대원 선생이 다가와서 내가 마신 만큼씩 첨잔을 하곤 했다. 어쩌나 보려고 술을 좀 많이 마셔보았더니 어김없이 내가 마신 만큼을 또 채워준다. 남에서는 술꾼들이 첨잔을 싫어하는 편인데 북에서는 그렇게 마신 만큼씩 술을 채워주는 게 예의인 모양이다.
  
  육류를 중심으로 차린 화려한 안주들 속에는 해산물 요리가 거의 없었다. 뭐 그런 사정이 좀 있겠거니 여기면서, 가급적 덜 취하려고 아껴 마신 들쭉술이 들쭉날쭉 취해왔다. 남쪽에 대한 궁금증이 전혀 없는 것처럼 북측 사람들 그 누구도 남쪽에 관한 얘기를 묻지 않았다. 북쪽을 궁금하게 여기는 남쪽사람들도 없는 것 같았다. 화기애애한 만찬이었지만 사실은 식탁마다 화제가 궁했다. 서로 궁금증을 감추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았다. 여자들이 처음 만나면 서로 제 남편 칭찬을 하다가 친해지면 다투어 흉을 보기 시작한다는데, 이 사람들은 과연 언제쯤 서로 다투어 흉을 보게 될 건지 들쭉날쭉 취하는 중에도 아득하게만 여겨진다.  

  이쪽 저쪽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는 장혜명 시인이 나에게 와서 인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오지 않았다. 내가 그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안내원선생이 저분이 장혜명 선생이라고 내 뒤쪽 건너편 식탁에서 이병천 피디와 환담중인 사내를 가리켰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내 꿈이 너무 야무졌나 보다. 장혜명 시인은 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다.  단장선생이 나 때문에 그를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이 자리에 오도록 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듣고 나서 장혜명 시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조운선생의 유족을 만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연구자료를 구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아마도 어려울 거라고,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고 못을 박는다. 숨이 막히고 술기운이 싹 달아났다.
  나는 작가 출판사에서 복간한 『조운시조집』한 권과 조운시인에 관한 내 논문 한편과 내 시집 『눈 내리는 마을』 한 권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재빨리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는 건너 건너편 식탁 위에 있는 로동신문을 잰걸음으로 가져오더니 내가 준 책과 논문을 신문지 안에 담아들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의 거동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나에게서 받은 것들을 어디선가 황급히 감추거나 버릴 것 같았다. 시집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간 뒤, 로동신문에 가려진 조운시조집과 논문과 내 시집 대신 내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찬이 끝났는지 기억에 없다. 장혜명 시인에게 시집을 줄 때 꺼내어 싸인했던 내 만년필(4 년 전 내가 전북작가회의 회장을 그만둘 때 회원들한테 선물로 받은 페리칸)과 내 야무진 꿈을 어디에 흘렸는지도 기억에 없다. 호텔 일층 코너에 있는 술집에 앉아서 대동강 맥주를 마셨다. 한복을 입은 술집 접대원 선생들이 곱고 친절했다. 옆자리에서는 남쪽 학생들이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하나. 반갑습니다. 등등의 노래를 접대원 선생들과 서로 주고받고 했다. 내일은 다섯시에 일어나야 한다는데, 취하다 말면 영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잠을 자려고 맥주 몇 병을 더 마셨다. 접대원 선생에게 망치를 하나 달라고 주문했다. 망치 말씀입네까?  눈을 호들갑스럽게 뜨고 접대원 선생이 물었다. 이 밤중에 웬 망칩네까?  채워주지도 않는 잔 깨버릴랍니다.(이건 박남준과 안도현의 버젼이다) 미처 몰랐시요 채워드려야디요. 호호호.
    
호텔 안의 바....여기서 줄창 술을 마시던 이들도 많았다.

  일삼아 후배 시인들의 버젼까지 동원해 보아도 가슴 답답한 낙담은 더 무겁다.술값 치르고 한 병 더 달라고 해서 들고 잠자리로 들어왔다. 혼자 자는 방이 너무 넓었다. 들고 왔던 술을 마저 마셨다.

[2006-12-01 16:19: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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