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002.12.3)
작성자 : 鄭洋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智勝 스님의 『한밝나라 이야기』

  이완용이 고문으로 있던 <조선사편수회>에서 이완용의 질손(姪孫)인 이병도는 식민사관에 맞추어 조선의 역사를 줄이고 고치고 깎는 일에 매달렸다. 해방이 된 뒤에 불살라야 마땅했을 이병도의 글이 그대로 국정 국사교과서가 되어버렸고, 교과서라는 마른 섶을 타고 거침없이 그 거짓의 불길이 번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밝나라 이야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잃어버린 땅,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잃어버린 신화, 이병도의 식민사관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나서는 지승스님의 숨결이 거칠다.『부도지(符都誌)』의 해설을 축으로 삼아 펼쳐지는『한밝나라 이야기』를 통하여 지승은 김부식의 모화사상과 이병도의 식민사관을 거세게 원망하면서 그 특유의 거친 숨결로, 그러나 꼼꼼하게, 잃어버린 신화의 숲 속에 훤칠한 길을 닦아놓고 있다.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놈의 신하 노릇은 하지 않겠다며 왜왕에게 화형을 당했던 신라의 박제상은 많은 얘기를 후세에 남기고 있는데, 그는 그런 이야기들만 남긴 게 아니라 그의 영해 박씨 집안에 가보로 삼는 책을 대대로 전해오도록 했다. 1600년 동안 전해온 그 책 이름이 『부도지』다. 『삼국사기』보다 860여 년을 앞선다. 우리 고대사에서 잘려나간 단군 이전의 신화가 기록된 책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박문량)이 바로 박제상의 아들이라고 한다.
  비밀리에 전해왔다고는 하지만 조선조 세조 이전까지는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고 김시습은 <징심록추기>에 적고 있다. 고려 태조는 직접 사신을 보내어 그에 관한 일을 상세히 물어왔고, 세종대왕도 영해 박씨 종가와 차가를 한양으로 불러들여 성균관 옆에서 살도록 배려했다고 김시습은 적고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맞섰던 박씨 일가는 여기 저기 쫒겨다니다가 마침내는 함경도 문천의 운림산으로 숨어버린다. 그 후 몇 백년이 지나 이 책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 박금(朴錦)씨 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의 단군이야기는 천지창조 다음 단계인 인간창조 신화다. 『부도지』는 단군 이전의 천지창조신화가 담긴 책이다. 태초에 음(音 sound)이 있었고 그 음율에 의해서 이 세상 만물이 빚어진 것으로 『부도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결의 거문고, 우륵의 가야금, 피리소리로 달을 멈추게도 했고 열흘 넘도록 두 개의 해가 동시에 뜨는 변괴를 노래로 다스린 월명사, 노래 불러 역신을 몰아낸 처용, 신문왕 때의 만파식적, 용왕에게 빼앗긴 아내 수로부인을 노래로 찾아낸 김순정공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음율(音律)과 관계된 신비한 사연들이 우리 문화사 속에는 날줄 씨줄로 짜여 있다. 음율로 만물이 빚어졌다는 『부도지』의 사연을 상기할 때 그것들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신화는 '벌떡벌떡 숨을 쉬는 화석'이고 역사는 그 민족의 음식이라고 지승은 말한다. 모화사상과 식민사관의 독이 든 음식을 우리 민족이 너무 오래 먹어서 모화와 친일이 곧바로 친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신화를 발 아래로 굽어보게 하는 지승스님의 이야기가 딱히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친일과 친미에 찌든 대선후보들로부터 요즘 '국민 여러분'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나라 국민인 것이 정말로 부끄럽다.

[2006-11-27 20:03:35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