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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2002.2.6)
작성자 : 鄭洋 


< 정양시화집 <동심의 신화> 책머리글 (2003년 1월 30일 발행, 신아출판사)>

  나는 아직도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박희선 시인의 장편서사시 <새앙쥐와 우표>에는 "아저씨가 시인이라며?"라고 묻는 꼬마의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텃밭에서 작약 뿌리를 들추던 주인공의 손가락들이 피르르 떨리면서 흙부스러기가 무릎 위로 부슬부슬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 흔해빠진 시인이라는 호칭이 뭐가 그리도 대단해서 마치 도둑질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을 파르르 떨어야 하는 것인지 당시의 나로서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양주동 선생님은 가끔, 당신의 무덤 앞에 '시인양주동지묘' 라고 새긴 비석을 세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딱히 비석을 세워달라는 게 아니고 국문학자,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예술원회원, 교수, 문학박사 등등 당신이 두르고 사는 너절한 이름들에 비하여 시인이라는 이름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시인이란 과연 그렇게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이름인지 역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그분이 쓴 시 중에 우리의 기억에 남는 시가 뭐였던가도 잘 생각나지 않았고 평소에 과장을 좋아하시던 분이라 뭔가 또 과장된 표현이겠거니만 여겼다.

  손가락에 낀 반지 자랑하듯 시인인 것을 빛깔삼아 사는 이들도 많다. 주변에 그런 허망한 시인들이 많아질수록 시인공해가 심각해지고 당연히 시인은 천해진다. 직장이나 집안이나 술집에서도, 혹은 이웃에게도 시인은 지천꾸러기나 되고 흉이나 짐이 됐으면 됐지 결코 아름답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못 되는 세상이다.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시인임을 가능한 한 숨기며 사는 주눅든 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 문단에는 시인 아무개라고 제 명함을 찍어서 틈날 때마다 돌리던 시인이 몇 명 있었다. 그 사람들 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미친옴 소릴 들었다. 언젠가 그들을 비웃는 말들 속에 나도 슬쩍 동참하기는 했었지만 께름칙한 뒷맛이 남았다. 시인이 지천꾸러기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세상에 시인인 것을 가능한 한 감추고 사는 것이 미덕인지 그렇게 당당하게 자랑삼는 것이 미덕인지 얼핏 구분할 수가 없어서였다. 시인임을 내세우다가 남의 입질에 올라 미친옴 소리나 듣는 세상보다는 시인임을 그처럼 당당하게 자랑삼고도 거칠 게 없는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싶기도 했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으로 독재의 골이 한참 깊어질 무렵 나는 시쓰기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문학이란 실로 개똥만도 못하다"던 말년의 싸르뜨르적 절망에 심각하게 감염된 탓이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저격당하던 10,26까지 시쓰기를 그만두었던 그 7년 동안에 나는 가명으로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문에 당선된 일이 있었다. 장난끼 섞인 짓이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그게 무슨 짓이었나 싶어 생각날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부끄러운 일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시로 당선되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직장에서도 친척들도 주변사람들도 시인보다는 문학평론가를 훨씬 대견하게 여겨주던 것이다. 시쓰기를 그만두었으면서도 속새로 시인임을 은근히 자처하던 나로서는 참 황당한 노릇이었다. 더러 남의 시집 해설 같은 걸 쓰게 되면 내 이름자 뒤의 괄호 안에는 문학평론가라는 호칭이 따라붙기도 하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눈길이 개운하질 못하다. 이런저런 너절한 호칭으로 채우는 그 괄호가 꼭 필요한 것인가. 괄호가 필요 없는 맨이름일 수 있다면 얼마나 한갓지고 개운할 것인가.

  속새로는 늘 시인임을 자처하면서도 그 동안 나는 시 쓰는 일에 전력투구한 시절이 거의 없다. 어쩌다 시를 쓰고 싶을 때 가뭄에 콩 나듯 한 편씩 썼을 뿐이다. 시 쓰는 것을 핑계삼아 일 주일이든 한 달이든 따로 시간을 내본 일이 나에게는 없다. 시 쓰는 일 대신 나는 40년 가까이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교단의 월급을 받아왔다. 그 험한 시절에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먹으며 살았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그 험한 세상에 대하여 죄스럽고 부끄럽다. 그것들은 내가 이 세상에 시인임을 내놓고 자랑삼지 못하는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벗어던지고 어딘가 깊이 틀어박혀서 오래오래 시를 쓰고 싶던, 교단생활 초기의 간절했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쓰고 싶은 글만 쓰면서 사는 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이 써야 하는 글도 많다. 그 동안 내가 썼던 시들이 꼭 쓰고 싶어서 쓴 것들이라면 이 책의 1,2,3부에 실린 글들은 조운과 신석정에 관한 글 말고는 대개 어쩔 수 없이 쓴 글들이다.  어쩔 수 없이 쓴 글들이긴 해도 여기저기서 구차해지느니 차라리 따로 집을 지어 제금이라도 내주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시에 관한 글들이어서 <시화집>이라는 이름으로 엮어보았다.

  4부의 부록편에는 그 동안 내가 쓴 시에 관하여 다른 이들이 언급한 글들을 발표된 시기에 따라 순서대로 정리했다. 언젠가는 한 데 모아보고 싶은 글들이었는데 이 참에 외우 오하근과 몇몇 후배문인들의 생각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누구에게 혹시 무슨 도움이 될 자료일지, 더러 빠지기도 했겠지만 나로서는 챙길 만큼 챙긴 결과다.

  열심히 시를 써본 일이 없는 나 같은 한량에게 눈길을 주신 문단의 선후배 동료들, 그리고 기꺼이 출판을 맡아준 신이출판사에 감사드린다.      

                                      2003년 1월 전주 두물머리에서
                                                           정   양

[2006-11-27 20:09:3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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