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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시 (2003.2.8)
작성자 : 鄭洋 


옆구리 결릴 때


감기는 나아도 기침은 남는다
가래를 뱉어도 기침은 남는다
옆구리가 자꾸 결린다

며칠 결리다 말겠지 싶던 게
한 달도 넘게 결린다
가래 뱉을 때마다 결리더니
요새는 숨만 크게 쉬어도 결린다

약 먹고 침 맞고 찜질도 해보지만
담배부터 끊어야 가래가 삭을 거란다
가래 삭아야 기침이 멎고
기침 멎어야 결리는 게 풀릴 거란다
의사 아닌 나도 그쯤은 알고 있다

기침보다 가래보다 담배보다 더
참기 어려운 그리움 하나
아직도 삭지 않았나 보다
옆구리 결릴 때마다 우선
담배부터 피우고 싶다


어금니


미당선생 고향에 묻히는 날
어금니 뽑으러 나는 치과에 간다
함께 조문 가자던 친지들이
하필 오늘 뽑느냐고
투덜거리며 전화를 끊는다

투덜거리지들 마시라, 핑계가 아니다
미당선생은 따뜻한 산자락에 묻히고
내 어금니는 단골치과 피묻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소주병도 척척 까던 어금니였다
미움도 절망도 야물게 씹어삼키던
이 세상 험한 꼴들을
이를 악물고 용서하던 어금니였다
오랜 세월 시리고 욱신거리고
악취 머금고 치과에 드나들면서
뽑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보자던
이제는 혀만 닿아도 캄캄하게 아픈
아아 너무 오래 견딘 어금니

아픔도 오래 견디면 슬퍼지는가
혀만 닿아도 캄캄하게 아프던 슬픈 시인아
욱신거리며 조문가는 대신
야물게 씹어 삼킬 것들을 위하여
이를 악물고 용서할 것들을 위하여

차창 밖 눈 녹는 겨울햇살이
어금니 속에 시리게 꽂힌다


신털미산

금만평야 적실 뚝을 쌓으러
방방곡곡 백성들이 여기 끌려왔었다
흙 퍼나르다 이 언덕에 모여 앉아
투덕투덕 신바닥에 묻은 흙을 털었다
처자식 그리며 늙어가던 언덕이었다
투덕투덕 몸부림치던 뼈를 묻던 언덕이었다

이 나라에 맨 처음 만든 저수지였다
벽골제 긴긴 뚝길이 들 건너로
몇 십 년을 뻗어가고 그 곁에
투덕투덕 신바닥 털어낸 흙들이 모여
이렇게 그들막한 산이 되었다

신바닥 발바닥 털어낸 흙들이
얼마나 모이면 산이 되는지
믿을 테면 믿고 말 테면 말라고
들비둘기떼가 바람을 가르며
아랫마을 대숲으로 숨는다

산마루에는 키 넘는 억새풀들이
넋 놓고 지평선을 바라본다
억새풀은 지평선 위에 농자천하지대본을
쓰라리게 쓰라리게 서걱거리고
몇 백 년 건너 지평선이 스스로 가물거린다
눈 감아도 눈 앞에 다가서는
눈 뜨면 다시 가물거리는 지평선

눈 감아도 떠도 가고 싶은 고향산천이
뼈 빠지게 살다가 뼈만 묻은 얼굴들이
글썽거리는 지평선에 몇 백 년 묵은
노을이 탄다

* 벽골제(碧骨堤)와 신털미산
  전라도 김제 땅을 옛날에는 '벼고을"이라 했고 그걸 소리나는 대로 '碧骨'로 기록했었다.     벽골제는 백제 때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만든 대규모 저수지였다고 한다. 그 옆에 노동자    들의 신바닥에 묻은 흙이 털려서 쌓였다는 신털미산이 있다.

[2006-11-27 20:10:2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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