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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시 (2003.2.17)
작성자 : 鄭洋 


大同契 집터


전라도 모악산 아래
금산사 아래 제비봉 아래
솔개봉 아래 금평저수지

청둥오리떼들이
기우는 햇살 뒤적거리며
물결에 몸 맡기고 출렁거린다
그 물길 코밑에 두른  
밭뙈기 하나

목 잘린 수숫대 여남은 개
듬성듬성 서 있는 밭
깨알 털린 들깨다발 몇 무더기
녹다 만 눈을 이고 쓰러진 밭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여기가 바로 정여립이
대동계를 모으던 집터란다
모악산 아래 금산사 아래 솔개봉 아래
제비봉 아래 가장 낮은 곳 골라
목 잘린 채 서 있는
피먹은 수숫대들이 심상찮다

왕후장상 따로 있냐고
양반 상놈 따로 있냐고
어울려 대동세상 만들자던 꿈이
이렇게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두런거리며 남몰래 모여들었구나

두런거리는 물결 뒤적거리며
젖은 날개 파닥거리며 청둥오리떼
남은 꿈을 쪼아먹고 있다
  


아니 온 듯 다녀가기


변산반도 옆구리
부안땜 가는 길에는
오밀조밀한 바위산과
바위산 아래 대숲 적시는
검푸른 물결이 고와서 사시사철
일부러 들러보는 이들이 많다

땜 아래쪽에는
조물주의 솜씨를 흉내낸
오밀조밀 꾸민 공원이 있고
공원 입구 나이 어린 벚나무 가지에는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말일 게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허름한 현수막 하나 사시사철
비스듬히 걸려 있다

고갱은 제 그림들 불지르고
그 불길 속에 죽었다던가
한세상 아니 온 듯 다녀가려고
스님들은 또 그렇게 제 몸 태우는가

쓰레기 버리지 말자는
부안땜 그 현수막 볼 때마다
서둘러 버릴 것들 생각이 난다
지울 것들이 태울 것들이
한세상 못 버리고 사는 것들이
자꾸 맘에 걸린다



無子孫 一千年香花之地


金堤市 萬頃面 火浦里 佛居村
붉은 나문재가 무더기 무더기 자라는 갯마을
붉은 갯마을, 불갯마을이었겠지
어떤 덜 떨어진 놈이 유식한 체하느라고
마을 이름을 吏讀式으로
火浦里로 佛居村으로 바꾸었겠지

왜정때 『조선창극사』를 썼던
정노식 선생도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들도 산도 아닌 소나무숲 건너
양지바른 밭자락 같은 낮은 잔디밭에
그들막한 무덤 하나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이 무덤을
소원 빌면 이루어지는
희한한 명당으로 알고 찾아다닌다
자식도 없이 피붙이 떠나
한세상 정처없이 떠도니던
불효 막심한 진묵스님이  
부처님에게 자식을 빼앗긴
그 어미의 슬픔을 달래려고 터잡은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곳에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리라고
후손이 없어도 한 천 년쯤
소원을 비는 香花가 끊이지 않을 거라고
넌지시 예언도 해 놓고
소원에 매달려 소원에 시달리는 이들이
두고두고 찾아다니도록 미끼를 매달고

으시딱딱 스님이 중매서고
효심과 소원이 맞절하는 무덤
불교와 유교와 풍수가 합세한
아름다운 혹세무민의 무덤

스님의 효심을 탓하지는 말자고
스님도 공자도 혹세무민도
탓하지는 말자고
갯마을 나문재 잎파리들이
안 보는 척 흘깃거리며 자꾸 낯을 붉힌다.

* 나문재: 만경면 화포리 일대에 떼판을 이루고 있는 붉은 빛깔의 다년생 풀
          보리고개를 넘던 이들이 뜯어다 삶아먹던 소문난
          구황식품이기도 했음.




작대기


빈집 부엌에 작대기 하나
부엌문 떨어져나간 문기둥 옆에
지게도 주인도 없는 작대기 하나

살짝 굽은
손잡이 근처가 반들거린다
작대기 하나 지팡이 삼던
오르내리던 산천이 반들거린다

고개 세우고 달려드는 까치독사를
엉겁결에 때려잡던 작대기
모닥불 뒤적거려 잘 익은
고구마도 골라내고  
이 세상 야속한 놈들 무작정
등짝을 후려치고 싶던 작대기

휘둘러버릴 살림살이도
지게도 다 벗어던진 채 주저앉아
이 작대기로 땅바닥 치며
펑펑펑 울던 사람아

이 세상에는 무식하게 후려칠 것들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가
부러져라 내리쳐도 안 부러지던
반질반질 손때 묻은 작대기 하나
아직도 문기둥에 기대고 있다

[2006-11-27 20:17: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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