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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핑계와 조시부시와 (2002.3.22)
작성자 : 鄭洋 


지난해 연말부터였으니까 제가 담배 끊은 지도 그럭저럭 햇수로는 2년째, 달로는 석달째, 날로는 오늘로 38일째 됩니다. 그런대로 금연에 성공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인다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담배를 끊는 건지 굶는 건지 쉬는 건지 아직도 자신 있게 밝힐 수가 없고, 만나면 안 될 사람, 그래서 만나지 말자고 다짐해보는 사이일수록 더 보고싶어지는 것처럼 담배 안 피우는 동안 하루 한 시 담배 피우고 싶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만나고 사는 세상에 그까짓 것쯤 못 끊으랴 싶어서 금연을 결심하는 이들 치고 금연에 성공하는 일이 드문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고통과 열정과 안타까움, 그것이야말로 금연실패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담배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그리움과 열정과 초조와 갈등과 슬픔과 분노와 안타까움 같은 것들을 먹고 사는 식물인지도 모릅니다.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상족도 못할 만큼 독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주변에서 금연에 실패한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기보다는 일단 맘이 놓이고 그 사람에게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금연에 성공했다는 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실망감이나 인간적 거리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이러한 친근감의 곁에는 그 고통이나 그리움이나 분노나 열정에 대한 공감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싸움이 잦으면 금연을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금연실패의 원인은 아닙니다. 핑곕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해낸 개, 누렁이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그 동화가 실현된 감동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던, 그리고 그 기사가 꾸며낸 것이라는 다음날 신문기사를 읽고 다시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던  황순원선생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황순원 선생님으로하여금 끊었던 담배를 거듭 피우게 만든 그 신문기사들도 사실은 금연실패의 아름다운 핑계입니다.
  하루 한 시 담배 피우고 싶지 않은 때가 없는 저로서도 요즘 그런 핑계에 굶주려 있습니다. 담배 참고 지내는 신경질 속에는 황순원 선생님의 경우처럼 감동이나 실망에 대한 반응이 유별날 것이라고 넉넉히 짐작은 합니다. 부시의 연두교서에 접하면서 저는 요즘 그 신경질이 폭발 직전에 있습니다. 조지고 부시는 일에 이골난 부시네의 그 가계적 물림은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수세기 동안 지구상에 저질러온 만행들을(저는 최근에 촘스키의 <불량국가>를 읽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드러내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조만간 한반도에 찾아올 부시가, 조지고 부시는 그 가계적 물림을 뉘우치고 180도 태도를 바꾼다면 그 때 저는 황순원선생님처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저런 핑계들이 그립습니다.  

[2006-11-27 19:35:1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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