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이병초의 성장통>15. 집 2
작성자 : 김경운 
파일1 : baram379_1555988733_01.png (352.6 KB)
파일2 : baram379_1555988733_02.png (816.3 KB)







<이병초의 성장통>15. 집 2


2.

  증조부 제삿날 사당동 고모가 무심코 얘기를 던졌다. 할머니가 홧병으로 쓰러진 뒤 끝내 못 일어나고 돌아가신 연세가 쉰한 살. 논보다는 밭이 많았다는 우리 집은 밭이 사십 마지기가 넘었고, 논은 스물다섯 마지기 정도였다고 했다.

  고모들 얘기에 따르면 이 살림은 내 친할머니가 일궈낸 것이었다. 살림을 늘리는 데는 억척이었다지만 씀씀이가 푸져서 동네 인심이 우리 집 곳간에서 나올 정도였다고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이제 누구를 본받으며 살꼬.”하며 슬퍼했다던 할머니 상喪을 치르고 나서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빨랫감 널벅지를 머리에 이고 대문을 나서려다가 탱자나무울타리 속 커다랗게 자란 오동나무 밑동께에 뭐가 기일게 누워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거 머시다냐? 하고 가깝게 다가섰다가 고모는 그대로 나동그라진 모양이었다.

  굵은 서까래를 눕혀 놓은 것 같은 흉측한 구렁이가 누워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구렁이의 출몰이 심심찮았다고 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구렁이 대가리께로 고춧대 태운 연기를 보냈어도, 흰죽을 밀어 놓았어도 이틀이고 사흘이고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언제 보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 좋던 살림이 구렁이가 나타난 뒤로 허망허게 무너져 버렸당게.”

  고모는 그 일이 눈에 보이는 듯 말에 속도를 냈다. 이야기 중간에 내 증조부 얘기를 섞어 가면서 대문을 옮기지 말 걸 그랬다, 대문 양쪽에 있었던 측백나무는 베지 말 것 그랬다, 정짓간에 물항아리 캐내지 말 걸 그랬다고 안타까워했다.

  구렁이가 나타난 이유가 집안의 것을 옮기고 베고 캐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 뒤안에 파놓았다던 고구마굴 메운 데서부터 선산에 못 든 셋째 증조모 묏자리까지 들먹였다.

  정말로 그랬을까. 집안의 것을 옮기고 베고 캐냈고 메웠기 때문에 묏자리를 잘못 잡았기 때문에 느닷없이 구렁이가 나타났을까.

  집에 복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그래서 ‘업’이라는 별호를 달고 다니는, 귀까지 달렸다는 구렁이가 조화를 부렸기 때문에 내리 사흘 동안 우리 보리밭에만 비가 유독 퍼부어졌고 500석은 너끈할 것이라던 보리소출이 150석으로 줄어든 것일까. 구렁이의 저주 때문에 키우는 개마다 크다 말고 죽어나갔으며 둘째 숙부가 끝내 무릎병을 못 고치고 나무상여를 탔다는 말일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가 내 집에는 있었다. 누가 말을 꺼내든 옛집의 한복판엔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많았다.

  기억이란 정지된 것이 아니라 현재적 욕망으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그러니까 옛날 얘기일수록 새로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라는데 얘기의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지어낸 것인지를 구별할 만큼 나는 총명하지 못했다.

  좌우간 집은 망했다. 동네 사람들의 입똥내에 휘감긴 구렁이 얘기를 감고 우리 집은 거덜났다. 아직도 우리 집 어딘가에 숨어있다는그 놈의 구렁이는 제삿날이면 느려터진 몸뚱이처럼 굼실굼실 되살아났다.

  그러나 내 기억은 달랐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구렁이가 집안의 골칫거리였는지 몰라도 내가 집 안팎을 분별할 때쯤의 골칫거리는 고양이였다.

  우리 식구들은 박 씨 집에서 얻어온 고양이를 나비라고 불렀다. 나비가 새끼였을 때는 귀염둥이였다. 나비야,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까이 왔고 머리를 손에 박아대고 빙빙 돌고 떼굴떼굴 굴렀다. 새끼 티를 벗고 햇살에 등뼈를 쭈욱 펴는 모습은 식구들 마음을 여유롭게 하였다. 광이나 마루 밑에서 쥐를 물고 나오는 나비는 집안의 영웅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비 밥그릇에 유난히 비린 것이 많았다.

  나비는 언제부턴가 식구들의 말을 안 탔다. 갈수록 뺀질이가 되었다. 정이란 받으면 받을수록 더 허기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식구들 눈길을 독차지하고 싶은 나비는 안방에 똥오줌을 내갈기다 못해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쥐를 물어다놓곤 했다.

  군불 지피려는 아궁이 앞에 앉으면 불쑥 튀어나와 사람 간 떨어지게 하거나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식구들이 먹을 비린 반찬이 상에 차려지자마자 낼름 핥아먹고 달아나버리곤 했다.

  식구들이 이런 나비를 예뻐할 리 없었다. 나비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살구나무에 꽁꽁 묶어두고 싶었지만 식구들 손에 잡힐 나비가 아니었다. 날쌔고 재빠르기가 이를 데 없었다. 자신을 잡아서 묶어놓으려는, 아예 없애버릴지도 모른다는 사람의 눈치를 나비가 먼저 안 것 같았다.

  나비 밥그릇에는 파리가 끓어댈 뿐이었다. 제 밥그릇 안 비우고 어딘가에서 소일하다가 밥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나타나서 야옹대다가 누군가 밥숟갈이나 던져주고 생선 대가리를 던져주는 것으로 제 배를 채우고 휙 달아나기 일쑤였다.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18





[2019-04-23 12:05:33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