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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12 책 짱뚱이시리즈2/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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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12. 책 '짱뚱이 시리즈'2 /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그 녀, 이복주


  너의 울퉁불퉁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아주 쬐금 더해졌으면 더해졌지 툭툭 던지는 그 말버릇이 어디 갔겠느냐. 나이께나 먹으니 나 역시 그렇다. 살가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네가 나 같아서일까 자꾸 그립다.

  어젯밤 손이 무지하게 큼직한 네게서 김치 한 통, 김 한 톳, 시루떡 두 덩이, 석류 한 개를 얼결에 받아왔다. 눈은 살살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가에 이슬이 살짝 맺히려다 웃음이 살살 나오려다 눈앞이 또 흐려지기도 했다.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가족들에게 거의 주었거나 빼앗기고 살아왔다. 때때로 ‘give and take’ 하며 살고 싶다던 오랜 푸념이 친정언니 같은 너를 만나 꿈이 이뤄졌다고 해야 하나.

  오늘 아침 네가 준 김치를 미역국에 밥 말아 척척 걸쳐 먹고 나니 아직도 뱃속이 얼얼하다. 네게 고맙다는 카톡을 날리고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오늘 점심은 시루떡 한 덩이에 석류다. 도시락을 챙기다가도 인터넷을 통해 간 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서핑하다가도 네 기억들이 우수수 되살아난다.

  신작로 옆 개울가에 있던 쓰러지기 직전 너의 집에서 나는 아마 한 달에 한번 꼴로 자고 왔던 거 같다. 오빠들과 한 이불 아래서 외풍과 싸우며 새우잠을 잤던 우리 집의 겨울, 네 집은 나의 피난처였다. 너의 집은 그래도 방이 두세 칸은 되어서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는 구별해서 이부자리에 드는, 나름 주거문화가 있었고 나는 그것이 부러웠나 보다.

  여자들끼리 특히 너의 세 언니들 킥킥대며 새살떨던 이웃동네 오빠들 이야기, 고운 화장품 냄새를 무지 좋아했었다. 소를 키우는 네 아버지께서 새벽에 일어나 여물 쑤던 냄새,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 발을 데일 뻔했던 열 두어 살 이쪽저쪽의 너와 나.

  고구마밥을 댓잎 열고 나온 동치미와 가닥 김치를 짝짝 찢어 아침을 거하게 얻어먹고 집에 돌아오면 한 입이라도 덜고 온 나에게 아프지 않게 알밤을 먹였던 내 어머니.

  너의 큰 언니 ‘이남’ 언니는 벌써 70쪽으로 기울었겠구나. 다음에는 남자 아이를 달라고 ‘이남’이라고 이름을 지었던가. 그런 소망도 아랑곳없이 네 엄마는 그 후로도 내리 딸 셋을 낳으셨지. 그 중 네가 막내딸. 언니들이 어찌 너를 예뻐했던지 네 머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아카시아잎 줄기로 파마를 한답시고 돌돌 말아놓질 않나, 쇠 부지깽이로 고대해 준다고 머리카락을 태워 먹질 않나, 긴 머리를 땋았다가 올렸다가 수시로 스타일이 바뀌었던 네가 세상없이 부러웠다. 덕분에 네 집에 가면 내 머리도 가끔 불쏘시개가 되기도 했는데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면 물을 묻혀 띄운 머리를 죽여야 했다.

  나에게도 언니가 있기는 했으나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초등학교 막 졸업하고는 중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내 언니, 그니는 군입 줄이려고 친할머니댁에서 잔심부름 해주며 얹혀 살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품삯 받고 남의 밭을 매러 다녔거나, 다슬기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파느라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던 탓이다.

  나는 사실 허기가 엄청 많은 인간이지만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위장하고, 가면을 쓰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삶을 살았다. 가난이 던져 줬던 온갖 배고픔과 시름들. 그런데 너는 여전히 솔직했다.

  40년 만에 만났는데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흔한 쌍꺼풀 수술도 하지 않고 보톡스도 맞지 않은 네 얼굴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줬다. 화난 듯 퉁퉁 던지는 말본새, 이리저리 요란스럽게 치장하지 않은 네 모습, 남들에게 잘 퍼주는 버릇도 여전히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김장 김치를 사서 먹는다는 내 얘기를 듣고 놀라던 이복주. 내년에는 아예 김치통 두어 개 가져다 놓으란다. 살다보니 복이 넝쿨째 굴러오기도 한단 말이냐? 이걸 내가 누려도 될지. 40 여년을 서로 다르게 살았으니 한 삼년 지켜봐야 너를 읽겠다고 이리저리 잣대를 들이밀며 의심하려 드는 내가 참 한심하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21


[2019-04-24 13:03:1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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