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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16. 내 그림자 3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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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초의 성장통>16. 내 그림자 3

  3.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은 가방을 왜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지를 묻지 않았다. 너 학교 다니기 싫지? 이러지도 않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내 이마에 손을 갖다가 댔던 것이다. 이거 뭐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이 느낌이 드는 순간 선생님은 아주 다정스런 목소리로 철둑 너머에 있는 호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어차피 걸어다는 거 뭐 이 학교나 그 학교나 다를 게 없다고, 조금 더 걸을 뿐이라고, 네가 학교 생활하기에는 그 학교가 여기보다 백번 나을 거라고 했다.

  아아, 호성초등학교. 호성보육원을 끼고 있다는 그 학교로의 전학.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았다.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팔복초등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보이스카웃이 못 된 것도 억울한데 친구 한 명 없이 외톨이로 살란 말이냐.

  나는 무작정 무릎을 꿇고 다시는 가방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지 않겠다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젠 그럴 필요 없다고, 너는 왜 편하게 다닐 학교를 어렵게 다니려고 하냐고, 일이 다 끝난 듯 오히려 나를 달랬다.

  그날 밤 종아리에 구렁이가 감긴 것처럼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았다. 회초리가 부러지면 동생들에게 다시 쪄오라고 하시면서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종아리를 불나게 했다. 회초리에 종아리가 툭 터져버려야 아버지 직성이 풀릴 것이었다. 회초리가 차악착 소리를 내며 종아리에 감겨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보이스카웃반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꼬박 닷새 동안 가방을 질질 끌고 등하굣길을 휘저었어도 나는 보이스카웃반에 들 수 없었고, 새 가방도 생기지 않았다. 씨름장에서 샅바를 메고 허리치기 앞무릎치기를 배우며 시간은 그냥쟝 지나갔다.

  또래들은 내 행동을 금세 잊어먹었다. 또래들은 내가 가방을 길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는 것만 중요했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내가 보이스카웃을 ‘뽀이스카웃’이라고 부르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내 행동이 불량학생의 표본일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보이스카웃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니들이 어찌 내 마음을 알겠냐는 듯,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나는 다시 활발해져서 어떤 껀수를 잡을까 골몰했다.

  나조차 까맣게 잊어먹은 일을 동창생들이 끄집어낼 때마다 해명에 가까운 설명을 할 필요는 물론 없다. 말썽쟁이든 보이스카웃이든 그딴 것이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불현듯 끈 떨어진 가방이 떠오를 때면 구렁이 감긴 것처럼 회초리 맞은 살갗이 다시 쓰리고 슬슬 가렵곤 했다.

  어떤 행동이든 그 행동의 이면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뭇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할 때는 얻어내야 할 목적이 확실해졌을 때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새삼 깨치곤 했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던 그녀는 내 초딩시절에 흠뻑 젖어버렸다. 어떤 얘기를 꺼내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손뼉을 치며 깔깔댔다. 자기를 기억해 주는 동창생들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그런 말썽쟁이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시詩를 쓰니 얼마나 장한 일이냐고 맘 놓고 나를, 내 초딩시절을 즐겼다.

  식물만 꽃이 아니라 사내가 가진 불꽃이 이렇다는 것을 여러 번 가르쳐 줬지만 그녀와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인연은 아니었나 보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직장 번듯한 사내가 생겼는지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내 전화를 일절 안 받았다.

  그 즈음 동창생 몇을 호프집에서 만났다. 그냥쟝 술 한 잔 먹는 자리였는데 그 때 나는 이 가방 얘기를 꺼냈다.

  가방을 길바닥에 질질 끌었던 행동 이면에는 보이스카웃반과 관계된 내 억지도 있지만 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싶은 치기도 한몫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 서푼어치도 안 되는 소망과 치기를 내려놓은 지 오래 되었어도 사는 게 이 모양이라고 계면쩍어했을 것이다. 철없이 킬킬댈 수 있는 지난 얘기에 기대어 노란색 원피스를 즐겨 입었던 여자에게 딱지 맞은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래들보다 정신연령이 한참 모자랐던 나는 지금도 못난이 축에 낀다. 이런 나를 몰고 옛길을 돌아보는 길. 내가 견디는 세월이 길 바깥으로 휘어졌든 남들이 나를 반편이라고 부르든 말든 비틀비틀 내 그림자나 밟으며 팔복초등학교를 찾아보는 길. 학교는 다른 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논밭에 둘러싸여 어린 치기를 응원해주었던 꼬불꼬불한 길도 없다. 자갈이 우둘투둘 깔렸던 길엔 아스팔트가 깔렸고 주위는 오죽잖은 공장 건물로 가득 찼다.

  그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욕망이 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어도 내 몸은 아직도 욕망의 집이 되어 있고, 잊을 것을 못 잊고 산다. 그래서 반편이 머리가 자주 무거운가 보다.  <다음 편 '17화, 비오는 날'이 이어집니다 >


  이병초 시인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15


[2019-05-02 10:53:0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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