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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20. 영화'안개속의 풍경' / 테오 앙겔로풀로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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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 20. 영화 '안개속의 풍경' / 테오 앙겔로풀로스


  <존재에 대한 첫 질문>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난번에 쓴 글로는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여 뒤끝이 영 불만족스럽거니와, 그를 모욕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무슨 말이라도 주저리주저리 덧붙이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겠다.

  나는 초등학교를 9살에 입학했다. 그 이유는 내가 학교에 가고 나면 2살 터울인 여동생이 혼자 남아 집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동생과 함께 학교를 보내려는 홀어머니의 꿍꿍이수였으리라. 입학하자마자 나는 수난을 당해야 했는데 선생님의 호구조사는 나를 여간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다.

  집은 기와집인지 초가집인지, 집이 있기는 한지, 농사짓고 있는 땅은 몇 평인지, 라디오는, 심지어 재봉틀이 있는지 까지 조사하였던 것 같다. 당연히 부모생존 여부와 형제자매 숫자까지 일일이 물었지 싶다.

  나는 이 조사를 할 때마다 자신 없는 투로 대답하거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아버지가 안 계시는 사람~~”하고 선생님이 물었을 때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내 옆집이나 앞집 뒷집, 그리고 동네 친구들의 아버지는 거의 엄마를 때리거나, 살림을 부수거나, 고주망태처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런 아버지가 나에겐 없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럼없이 손이 올라갔던 것이다.

  가끔 그런 아버지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무쇠솥단지 걸어 놓은 부엌 아궁이가 내려앉거나 방구들이 뜨뜻해지지 않을 때, 겨울 오기 전 초가지붕을 새로 얹어야 할 때, 돈이 없어서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할 때 등이 그렇다.
  
  남자들의 힘이 필요할 때에는 동네 친구 순남이와 승길이 아버지께서 주로 도와 주셨다. 그 분들은 우리 동네에서 점잖으신 분들로 호가 나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새참을 드신 후 잠깐 쉬면서 이리저리 오가며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나에게 혀끝을 차며 “아버지가 없어서 고생이 많구나. 니네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더라. 저어기 마그네다리 알지? 아마 거기 가면 니 아버지가 있을 거야~~ 키 좀 크고 얼굴이 하얗지 아마...?” 그리 심각해 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눈짓을 해 가며 살살 웃는 폼을 보아하니 믿거나 말거나 쪼였다.

  나는 이전에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구체적인 장소까지, 생김새까지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물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그 즈음 나는 한 달에 서너 번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는 야뇨증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가 두려웠었다. 그런 아침이면 으레 키를 쓰고 동네로 소금을 얻으러 가야 하는 망신을 떨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낮과 밤은 누가 왜 만든 것일까 원망도 하다가 가끔은 바닥 깔개 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잠들기도 했다. 오줌 누는 꿈을 꾸는 날은 영락없이 이불을 온통 적셔 놓아 엄마의 억장을 무너뜨리고는 했다. 아마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차가운 마루로 나를 쫓아내더니 무릎 꿇고 앉아 요강단지를 머리에 얹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것도 잠시 아무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당장 이 집을 나가라며 소리를 쳤다. 나는 손바닥을 비비며 잘못을 빌었다.

  부지깽이를 들고 으름장을 놓을 무렵 더 이상 나의 하소연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쭈볏쭈볏 요강을 내려놓고 사립문을 나섰다. 오빠도 언니도 동생도 멍 때리고 있을 뿐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못했다.

  밖은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고, 길바닥은 모두 빙판으로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밑창이 닳아빠진 검정고무신으로는 걸음이 도저히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손을 호호 불며 어둑한 하늘을 올려보는데 실로 막막했다. 나는 마그네다리로 방향을 정했다. 동네에서 가장 신뢰받는 분들이 하신 말인데 거짓말일 리 없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거적때기를 걷고 몇몇이 오가는데 거지나 다름없는 어른도 아이도 있었다. 그때 목발을 짚고 나오는 늙수그레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비록 몸은 불편해 보였지만 게 중 얼굴이 허옇고 번듯한데다 입성도 제법 깨끗하여 순간 바로 저 사람이 내 아버지다. 점을 딱 찍어 놓았다.

  나는 지금도 그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는 가끔 동네에 초상이 나거나 큰 잔치가 벌어지면 목발을 짚고 여러 거지들을 끌고 나타나서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며 꼬장부리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는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내 아버지는 저럴 리가 없다며, 내 아버지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했다.

  나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들을 좋아한다.『안개속의 풍경』의 음악을 만든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아다지오'를 서너 달 반복해 듣고 살던 때가 있었다. 그녀의 CD가 고장이 나서 멈춰버릴 때까지 지독하게 듣고 또 들었다. 그러고는 어느 날 몸살을 앓고 누웠다.

  그래 이렇듯 의리를 지키고 사는 거다. 끝까지 배반하지 않는 거다. 앙겔로풀로스와 카라인드루의 만남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 속 두 남매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 유랑한다. 걷고 또 걷는다. 언덕 끄트머리에 오래된 나무 한 그루 버티고 서 있다. 그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 너머에 그들을 존재하게 한 희망이 있는가. 잡은 손 놓지 않고 두 남매는 뛰고 또 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379


[2019-06-27 12:34:3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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