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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 시비평6. 최동현-바람의 맨발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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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 바람의 맨발





  최동현, 실로 반가운 이름이다. 내가 이십대 후반, 문단이 뭔지도 모르고 날 뛸 때에 그를 만났다. 그는 시인이었고 어떤 일에도 걸림새 없는 헌헌장부였으며 시가 아닌 짧은 글에도 갈라진 땅의 아픔을 밑그림처럼 펼쳐보이곤 했다. 부조리한 세상에 눈비음하지 않는 시학의 견지, 그의 글은 우리가 억장 막히는 시대의 불감증 환자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묻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그였지만 언제부턴가 문단에서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가 문단에 얼굴을 자주 안 비쳐서 그랬을 것이다. 시를 발표하기보다는 판소리 연구에 집중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보다는 먹고사는 것을 핑계로 선배시인께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한 내 정성 부족이 그를 만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이런 싹수없는 후배에게 그는『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2019, 모악)를 보냈다. 나는 단숨에 시편들을 읽어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시편들이었지만 시인의 언어감각은 생생했고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곰삭은 정서는 삶의 활력을 돋우고 있었다. 시행에 감기는 찰진 호흡이며,「민화」,「어전리」,「들」,「만경강」등의 연작시편들은 당대의 모순을 뿌리째 캐내고 싶은 욕망이 서려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말의 질감이 정갈하게 간직된 시편들도 여럿이었다.


그곳에 가면

키 큰 갈대들이 있지.

갈대들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의

맨발이 보이지.

늘 젖어 있는 바람의 울음,

그 눈물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깊이를 알 수 없는

낡은 햇살

뉘우치며 일렁이는 물결

다시 맞출 수 없는 부서진

꿈,



그 아픈 속살들이 다 보이지

                            -최동현, 「만경강」, 전문.





  지금까지 나는 “갈대들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의/ 맨발”을 못 보았고 “늘 젖어 있는 바람의 울음”도 내겐 언감생심이다. 만경강에 가면 “낡은 햇살”의 속살과, 물결의 속살과, 부서진 꿈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진술은 내 마음을 숫제 후벼 파는 것 같다. 바람이란 자연현상에 맨발을 입힌 시구를 나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전달의 소통만을 뜻하지 않는다. 새 언어 또는 새 언어구조는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상상의 폭을 넓혀감과 동시에 삶의 희망이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만들지 않던가.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그것을 오래오래 아끼지 않은 시인에게 이런 언술의 축복은 없다.



  이 땅의 불평등을 되게 앓으면서도 서정의 맑은 끈을 놓은 적이 없는 최동현의 시편들은 오늘도 “뉘우치며 일렁이는 물결처럼” 반짝인다. 목숨이 왜 “서늘한 것(「아내 생각」)”인지 아직도 알 길은 없지만 오늘 아침 나는 그에게 “바람의 맨발”을 보낸다. 이 작은 정성이 “2019년, 목정문화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선배시인에 대한 예의이길 바라면서.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약력: 전주 출생. 1998년《시안》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살구꽃 피고』『까치독사』등이 있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17


[2019-11-15 15:49:2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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