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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41. 책'맨박스 MAN BOX' / 토니 포터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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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41. 책 '맨박스 MAN BOX' / 토니 포터




나는 남편을 고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이 지면에 연재를 하면서 읽지도 않은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기는 처음이다. 제목이 먼저 떠오른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은 밝힌다.

  그러니까 지난 학기였다. 학생들과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 중에 현재 읽고 있는 책 소개와 함께 느낌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12회 24시간 과정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1학년 남학생이 『맨박스』에 대해 찬찬히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참석한 학생들에게 이 책읽기를 적극 권장했다. 나는 책 제목에서 거부감이 탁 느껴졌었다. 남자들을 변명하거나 옹호한 얘기지 않을까 시덥잖게 생각했다.

  자식들의 머리가 굵어지고 사회로 발을 딛고부터는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워졌다. 휴가 맞추기는 더욱 더 힘들다. 지난여름 남편은 선후배 모임에서 혼자 여행을 가고 남은 우리들은 맛집과 카페를 탐방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날씨도 덥고 어린 나이에 벌써 귀찮아하는 빛이 역력하여 나는 애들이 하자는 대로 손을 들어줬다. 그래야 만족도가 높으리란 확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꼭 어느 누군가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되어 있다. 그게 누구이겠는가? 당연히 이 자리에 없는 나에게는 남편이요,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물망에 오르지 않았겠는가?

  소고기를 구워먹는 자리였다. 우리는 모처럼 맥주잔을 기울이며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딸내미가 갑자기 “아 너무 좋다. 아빠가 없어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나는 내심 놀랐다. “고기를 굽는 즉시 허겁지겁 드시는 아빠가 없어서” 이러는 거다. 아 생각해 보니 남편은 음식이고 술이고 빨리 먹어 치우고 침대에 드러눕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고기가 금방 없어지는 것도 염려했지만, 음식을 천천히 먹는 습관이 들었던 것이다.

  어제 저녁이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밖에 없는 남편이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쁨에 들떠 나와 아들을 소리쳐 불러댔다. 자기 딴에 장한 일을 했을 때는 으레 그렇잖아도 큰 목소리가 더 커진다. 우리는 인사치레도 잊지 않으며 식탁에 앉는다. 그래야 이 요리라도 가끔 할 것이므로. 두루치기에 아들 녀석이 젓가락을 휘젓는다. 살코기는 다 어디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남편이 가위를 가져다가 비계를 잘라내고 살코기라며 내민다. 손톱만큼 작다. 그것도 몇 조각 떼어내니 아예 보이질 않는다. 아빠가 좋아하는 비계만 사왔다고,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이럴 수가 있냐며 온통 짜증이다(남편은 두루치기 좀 할라치면 꼭 본인이 고기를 사오곤 한다) 하해와 같은 남편은 “아빠가 먹고 싶어서 사왔으니 니가 이해 좀 해” 그런다. 남편을 닮아 ‘한 하해’ 하는 아들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는 듯 폭발하고 만다. “아빠는 늘 그러잖아!” 버릇없게 밥상을 차고 일어나 컵라면을 꺼낸다. 이것조차 뺏어 먹는 이 남자. 아 이 노릇을 어찌 하면 좋으리요~~



  나이 먹고부터는 나는 매일 머리를 감지 않는다. 오늘 아침 따라 쑥대머리가 되어 있다. 머리를 감는 날은 조금 서둘러야 한다. 우리 집은 지하수를 올려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물을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곳의 수압이 좀 약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물이 세게 나오질 않는다. 부엌에서 남편이 설거지 하느라 물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보, 물 좀 쓰지 마 ~~” 소리쳐도 무슨 생각머리를 굴리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물이 속 시원히 나오질 않는다. 나는 포기하고 바쁜 출근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다. 그 시간이라고 해 봐야 고작 1분이나 더 걸렸을까마는 어젯밤 일도 있고 해서 나는 참지 않기로 했다. 나는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고 나와 부엌으로 갔다. “여보시오(나는 화가 나거나 멋쩍을 때 끝부분을 ‘시오’를 쓰는 버릇이 있다) 당신 다른 사람 배려 좀 하고 사시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해. 남자들이 나이 들어 소외당하고 산다는 얘기 들어서 알고 있지? 당신 엄마한테 가서 다시 만들어 보내달라는 얘기 이제 하지 않겠어. 이제 내가 당신을 고쳐 나갈 거야.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이러고 살아?”

    
'맨박스'는 미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토니 포터가 저술한 책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남자다움’을 의심한다. 그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을 ‘맨박스’로 규정하고 있다. / 사진출처 = 네이버

남편은 이런 나의 잔소리에 대해 욱 성질을 부리지도 않고 “응 알았어. 내가 노력할게.”하고 대꾸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결혼 초에 이 모든 부당한 태도들을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믿는다. 계란찜 윗부분의 양념을 싹 걷어서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어느 날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나도 그 부분 먹을 줄 알며 좋아한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그는 나의 눈치를 살살 보며 나에게도 그것을 즐길 기회를 주더란 말이다.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깨우쳐 주니 그렇게 되더란 말씀이다. 그는 나쁜 남자인가? 절대로 아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얼마나 쩌렁쩌렁 살았겠는가. 어려서부터 그렇듯 당연하게 살아온 것이다. 당신의 할아버지로부터 학습 받아 온 가부장제를 아무런 생각 없이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누가 가르쳤는지…. 나는 끊임없이 잘못된 부분을 말할 것이다. 싸워서라도 쟁취할 것이다.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책상위에 『맨박스』를 찾아 올려놨다. 그를 알고 싶다. 백전백승? 하려면 주워들은 풍월로는 절대로 아니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국무부는 일본을 바로 알기 위해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연구하도록 하게 하여 『국화와 칼』이란 책을 저술하지 않았던가.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알아야겠다. 나 같은 남편들과 사는 여자들이 내 아들만은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남편 먼저 고쳐서 해로하시기를 바란다. 인생이 무지막지하게 길다더라. 그러고 보니 나에게 여자다움은 있었던가? 폐경 이후 거의 사라진 듯하다. 누군가의 남편인 그대들도 남자다움에서 가부장제에서 어서 빨리 해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84



[2019-11-15 15:56:3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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