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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45.책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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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45. 책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 홍승은




이 땅의 딸들에게


나는 명절은 물론 제삿날이 불편하다. 시댁 식구들 행사에서 특히 그렇다. 혼인 생활 25년이 지났으니 이제 만성이 되어 참을 만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가사노동은 여전히 불평등하지만, 요 몇 년 사이 그것 외에 또 다른 한 가지가 보태어져 힘이 든다. 시어머니(시아버지는 작고)를 포함한 시댁식구들과 가운데 끼인 나, 그리고 제일 아랫세대인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삼중고 때문이다. 내 눈에 문제의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 큰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란 얘기다.

  지난 추석 명절 전날이었다. 나와 동서,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은 고기를 굽고 밥상을 준비하며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 웬만큼 준비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아랫목 상석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물론 준비과정에서도 그리했음) 밥 더 달라. 술도 꺼내 와라. 자꾸만 지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엉덩이를 뗄라 치면 딸아이가, 엄마 내가 가져 올게 하며 벌떡벌떡 일어났다. 세 번째쯤 이 상황이 계속 되자 이번에는  한 눈치 하는 아들이 일어났다. 이때 할머니 하시는 말씀 여기 여자들이 이렇게 많으니 손자인 너는 가만히 있으란다. 나는 앗! 이 일을 어쩌리요? 딸과 아들의 눈이 동시에 마주치며 요즈음 젊은 애들의 표현 중 ‘개빡친다’는 느낌이 순간 내 몸에 좌악 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딸내미는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삼키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휴 한숨을 내뱉었다.

  식사가 끝나면 시어머니와 남편, 시동생(참고로 딸이 2명임)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역할에 분주하다. 내 아들은 할머니 댁에 오면 늘 몸을 도사린다. 할머니와 누나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오늘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 분담을 했나 보다. 그리고는 이내 할머니 눈에 띄어 버리고 말았다. 할머니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버럭 소리를 지르신다. 딸들 너희들이 하란다. 한 명 밖에 없는 손자는 가만히 있으란다. 이때 눈치 빠른 아들 하는 소리, “저 이런 것 안하면 할머니 증손을 못 보거든요?” 잠시 멍한 순간이 흐르고, 상황을 파악하신 시어머니 무렴한 듯 큰소리로 웃고 만다. 나는 한 시름 놓았다. 아! 저렇듯 웃는다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거의 자아비판 수준의 도마 위에 올라 가족들의 공세에 시달렸다. 본인도 힘들다고 했다. 할머니 사이에 끼어 어쩔 수가 없다고도 했다. 딸내미는 아빠에게 두 얼굴로 살지 말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고(집에서는 그 정도는 아님) 엄마도 부당한 질서에 대해 제기하란다. 자기네들이 도와 줄 것이므로.

    

  나는 이 정도 여기까지가 남녀 간 세대 간 주요 쟁점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지엽적일뿐만 아니라 지극히 편협한 생각으로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드러내지 않고 참고 견뎌왔던 거대하면서 소소한 부당함과 불편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속속들이 나의 문제들이었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여성 공통의 아픔이었구나. 이 책의 젊은 작가 홍승은은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를 인용했다. 미안하다 고생했다. 딸내미들.  

  지난 11월 내 생일에 딸내미가 선물과 함께 편지를 건네주었었다. “위대한 여성 이현옥님께. 생신을 축하드리며 소정의 선물을 바칩니다. …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여~~” 본인은 장난을 보태어 썼겠지만, 나는 감동했다. 이 땅의 평범한 아줌마를 이렇듯 높이 칭송해 준 사람은 그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언젠가는 가족의 문제들을 ‘엄마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지 말라며 충고도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위축되었었다. 그 말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서 말이다. 나는 그렇듯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찬찬히 내 인생을 돌아보니 과연 나는 ‘위대한 여성’, ‘존경받을 여성’임에 틀림이 없었다. 몇 사람의 몫을 하고 살았느냐 말이다. 안팎의 가부장제 틈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더냐 말이다. 나는 하마터면 울 뻔 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게 해 줘서 고마웠다.



  이제 페미니즘은 21세기 사조(思潮)로서 그 대세를 거역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반드시 진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권김현영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고 했다. 이 책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제목만으로도 뼈에 사무친다.  

  홍승은 작가의 책을 읽으며 아팠던 부분이 있다. 「이제 가족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승희가 아파하는 걸 보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방 한구석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벽에 “엄마, 엄마”라고 연필로 썼던 그 새벽으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서로에게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며 들려줬던 그 오후로, 자꾸 돌아간다. 승희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147p.)」 내 가족만 알고 살아왔던 내가 부끄럽다. 세상의 많은 딸들이여. 우리 연대하자. 역할을 나누어 주렴. 과연 각자도생이 살 길인지 함께, 진지하게,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                    

  고통의 글쓰기를 통해 구원받은 젊은 작가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내 딸아이가 몸만 자라지 않고 정신이 함께 성숙되어 가는 모습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77





[2019-12-12 17:48:0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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