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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46.영화 '자전거 탄 소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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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46.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고통 없는 성장은 불가능한가.

  나는 2016년 1월부터 내 컴퓨터에 엑셀 파일명 “이현옥(읽고 보고 듣고)” 에 잡동사니들을 입력해 왔다. Sheet1에는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들, Sheet2에는 보았거나 장차 볼 영화, Sheet3에는 읽었거나 봤던 칼럼, 유튜브, 텔레비전, 기타 등등을 나누고 구분하여 시시콜콜 정리해 왔다. 읽고 본 것들에 대해서는 년/월까지, 그렇지 못한 것들은 칸을 비워놓기도 했다. 작가나 감독, 배우, 개봉예정일 등의 특이한 부분도 메모해 놓았다. 간혹 빼먹을 때도 있었으나, 가끔 이 파일을 열어 유용하게 써 먹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내게 이 파일은 앞으로도 잘 쓰일 것이다.

  엊그제 나는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을 발견했다. 파일 감독란에 ‘다르덴 형제’로 써 놓은 것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내가 믿고 보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이들 형제의 작품이 왜 이제야 눈에 띄었는지, 조잡하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해 놓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는가. 코엔 형제 감독의 영화도 연달아 떠올랐다. 내가 믿고 보는 감독들이 아닌가. 형제간의 작업과정이 어떠했는지 가끔 궁금해 하지 않았더냐 말이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별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한 두 살 먹어 보이는 소년이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고 도망치듯 사라진 아빠를 찾으려고 자전거 페달을 사생결단하듯 밟아대거나 아니면 뛰어다니는 영화다. 결국 아빠를 찾긴 했으나 끝내 버림받게 되고(엄마 얘기는 나오지 않음) 이 지구라는 섬에 발 딛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 한 사람 주말 위탁모가 번번이 소년과 맞닥뜨리곤 하는데 소년의 분노는 꺾일 줄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위탁모가 내민 손을 가까스로 잡게 되는, 보는 내내 가슴이 도려내 듯 아리게 하는 영화였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나는 한 가닥 실낱같은 염원을 가져 보았다. 소년은 위탁모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그래야 나의 숨통도 트일 것이므로. 소년이 고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거나, 껍데기를 벗고 다른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위탁모 그녀가 내민 손을 절대로 놓지 말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소년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 어릴 적 아픔을 복기하는 듯 진저리가 났다.

    


  내게도 ‘유자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 친언니는 물론 먼 친척도 그 무엇도 아닌, 우리 집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세를 살았던(우리 집이 부잣집으로 방이 많아 세를 놓은 것은 아니다. 셋돈 몇 푼이라도 받아보려고 형제자매를 구분할 겨를 없이 한 방으로 몰아넣고 사글세를 놓았다.) 언니다. 나보다 8~9살 정도 나이가 더 들었고, 정이 많고 웃음도 잦고 눈물도 흔했다. 본인 입속에 들어가 있던 눈깔사탕조차도 내가 눈에 띄었다 싶으면 얼른 꺼내어 쓱싹 닦아 내 입에 넣어 줄 정도였다.

  언니는 이른 나이, 아마 스무 살 즈음에 혼인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동네는 꽤 컸었나 보다. 그때 우리는 아랫동네에서 살았는데 혼인 후 그 언니는 윗동네에 있는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으니까. 어둑어둑해질 무렵 학교에서 파하면 나는 큰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논밭 사이로 난 작은 길로 오가면 좀 빠르기는 하나 뭇짐승들과 정신 나간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까 두려워서 큰 길로 다녔다. 그 신작로 가에 그 언니네 시댁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다가 가끔 그 언니를 만날 때도 있었다. 추운 겨울방학 전이었을 것이다. 건빵이나 사탕을 내 손에 쥐어줄 때도 있었고, 그것조차 없을 때는 동상이 들기 직전 내 손을 문질러주기도 호호 불어주기도 했었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운동이 끝나고(키가 크다는 이유로 배구선수로 뽑힘. 초등학교 4학년~6학년까지 운동부였음) 주린 배와 무거운 책 보따리를 끌어안고 땅거미 내려앉은 신작로를 걸어가고 있노라면 나는 성이 잔뜩 나고는 하였다. 그래서 발에 걸리는 돌멩이와 흙, 풀들을 발로 힘껏 차며 분노를 쏟아냈었다. 배가 고파서 힘이 없어서 손가락이 벌러덩 뒤로 까지고 현기증으로 핑핑 돌때까지, 배구공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습을 시키며 대나무뿌리로 두들겨 팼던 선생님을 향해 그리고 배고픔을 증오했다. 때때로 억센 풀들을 손으로 쥐어뜯어 짓이기며 그것들에게 분을 삭였다. 누가 봐도 나는 반항아이거나 자폐성향에 가까운 아이였다.

  그때 그 언니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곳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말이다. 내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고기 한 접시(수육?)와 소금을 꺼내 놓으며 나에게 다짜고짜 먹으라는 것이다. 팥과 호박고지를 넣고 찐 떡을 먹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언니는 부엌 밖과 담장 아래를 왔다 갔다 하며 무엇엔가 쫒기는 듯 나에게 빨리 먹기를 재촉했다. 내가 그 고기와 떡을 싹싹 먹어치울 때까지 그 집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언니는 휴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빵빵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철없던 어린 나는 가끔 그 집 앞을 일부러 지날 때도 있었다. 행여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에서도 다르덴 형제 감독의 『더 차일드』와 『아들』, 『로제타』에서도 햇살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후안 아저씨, 미용실을 운영하는 위탁모 아줌마, 여자 친구 등. 불행한 그들의 몸을 만져주고 얼굴을 더듬어주던, 이 거친 세상에서 그들을 환대해줬던, 그래도 살아가리라 일어서게 해 줬던 사람들. 나 같은 것도 소중한 존재란 사실을 알게 해 준, 내 이름을 불러줬던 유자언니.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에 뺄래야 뺄 수 없는 어린 날 앞에서 나는 울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프다. 나와 다른 세계와 부딪힐 때마다, 한 개 한 개 깨달아 갈 때마다 고통스럽다. 나는 지금도 성장 중에 있나 보다.

  아빠와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으로 똘똘 뭉쳐 몸부림치던 소년이 위탁모 아줌마에게 들릴락 말락 한 말이 시리고 아프다.

“따뜻해요 입김이”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139


출처: 유튜브


[2019-12-19 18:46:2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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