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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11. 윤재철-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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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11.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 윤재철


    


  인간사와 관계없이 자연 생태는 제 나름의 질서를 지키면서 생멸한다. 계절을 따라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자연 생태의 부분인 인간의 몸도 이 질서 속에서 오늘을 산다. 하루도 쉽지 않은 인간사에 시달리면서도 몸은 제 할 일을 묵묵히 추린다.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ㅡ윤재철,「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전문

    


   도축장 가는 길이 죽으러가는 길일 텐데 삶의 “한 치 앞도” 모르고 돼지는 몸이 시키는 본능에 충실하다. 유태인을 무수하게 학살한 수용소, 그 책임을 지고 사형을 앞둔 그녀의 몸에서 생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엉기는 성욕처럼 몸 밖의 현실과 관계없이 몸은, 몸의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의 엄연한 질서는 평등하다. 꿈과 절망과 예감이 갈수록 무뎌지는 삶의 숙명을 뒤집어썼을지언정 생(生)은 남녀노소, 인종,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지 않고 자연 생태의 질서를 골고루 퍼준다. 시의 마지막 연에 가서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구절이 서늘하다. 독자의 눈길을 힘껏 끌어당긴다.

  삶 밖에서 피비린 인간사를 바라보는 이 구절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지식을 거절하고 싶은 시의 욕망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꿈은 모질어도 아름다운 것일까. 삶은 낯설지 않은데 아직도 생(生)은 피 흘리는 꽃이다.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2019-12-19 18:56:1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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