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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16. 이봉명-겨울밤 2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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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 16. 겨울밤 2-이봉명

겨울밤
  눈을 떠봐도 감아보아도 산밖에 안 보이는 곳, 전북 무주군에서 이봉명 시인은 꿀벌을 치며 산다. 누가 자신을 보든 말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시의 보폭을 넓혀간다. 지면을 얻고자 꾀똥 누거나 소맷동냥하기에 바쁜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것 같다. 어떤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시를 쓰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니냐고 이봉명 시인은 언젠가 내게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다.
 
 
 
       아무렇게나 널려진 집으로
   그날 밤 눈이 내렸다
   아버지가 불러온 가난과
   어머니가 챙겨둔 부끄러움을
   아이들은 잊은 채
   싸늘한 아랫목에 잠들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밤이 깊었다
   비겁하게 세상을 탓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건 순전히
   밤이 무섭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아이들이 잠 속에서 울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긴 밤을 뒤척이다가
   수북이 쌓인 눈길을 쓸어야 하는 일
   모두가 쌀밥으로 보이는 눈 내린 밤
   아이들이 자꾸 운다 그리고 그들은
   꿈속에서 외친다
   슬픈 것 아픈 것 추운 것 다 잊을 수 있어도
   배고픈 건 싫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아도
   허기진 밤이 깊을수록
   자꾸만 무섭다
                              -이봉명, 「겨울밤2」, 부분
 

눈 내리는 밤의 소회는 한국시가 얻은 원형적 통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밤과 눈과 배고픔의 등식은 근현대사의 뼈저림만큼이나 우리에게 쓰라리다. 시인은 과거 속으로 들어가서 무서움을 다시 절감한다. 아이들은 “슬픈 것 아픈 것 추운 것”보다도 배고픔이 더 싫겠지만, 절대적 빈곤 속의 밤이 시인은 더 무섭다. 아직도 캄캄한 밤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펴 보이는 서글픈 오늘이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삶이 황폐해졌어도 그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중성에 시달려본 사람은 왜 밤이 무서운지를 알리라. 가난보다도, 가난을 물고 있는 밤보다도 자신이 왜 더 무서운지를 잘 알리라. 색깔과 모양만 달라진, 여태 대물림되는 이 땅의 가난은 아무 말이 없다. 눈 내리는 겨울밤의 담채화 한 폭 같은 이 시를 왜 썼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미룬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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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12:04:5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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