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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시비평19. 백석-모닥불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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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19.모닥불 - 백석

    
"백석의 시가 지핀 모닥불은 오늘도 공동체적 삶의 모양새를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백석 시인은 평북 정주 사람으로 1930년에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후 1935년 8월 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했고 조선일보 계열사에서 편집 일을 거쳐 영어선생을 역임했다. 이력에 나타난 것처럼 그는 당대의 모던보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는 이와 달랐다.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시는 평북 정주의 토속적 정취를 주된 정서로 삼았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제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모닥불」, 전문





  이 시가 발표된 1936년의 상황은 불행한 시기였다. 조선 문학이 암흑기로 접어드는 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당시 시단은 모더니즘에 들떠 있었다. 조선 시(詩)의 미래가 바다 밖 서구문명에서 온다고 믿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백석은 모더니즘에 닿기는커녕 생활의 뒷전에 밀린 갓신창, 소똥, 개니빠디, 짚검불, 닭의짗, 초시 등의 시어를 통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백석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모닥불은 타오른다. 이미지즘에 토대를 둔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라는 빈약한 주제의식이 모더니즘은 아니라는 듯 불길이 뜨겁다. 독일인 노발리스와 미국인 포의 영향을 받은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의 시정신은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도시인의 비애”가 아니라고 모닥불은 이글거린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기계와 자본에 철저히 구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을 꿰뚫어보고 이전의 시 쓰기 방식에서 확실히 탈피한 모더니즘의 시편들. 전통과 단절,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 삶의 파편성, 소외, 자폐, 상품시장, 집단적 강요, 삶의 무출구성, 비규범적 언술 등을 시의 정면에 나타낸 모더니즘의 본질은 기계와 자본에 대한 투쟁이었음을 모닥불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든, 사람들이 돈을 신앙 삼았든 말든 백석의 시가 지핀 모닥불은 오늘도 공동체적 삶의 모양새를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식민시기에 타오르는 모닥불이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를 끌어안고 밤하늘에 치솟는 것인지, 분노처럼 이글거리는 것인지는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생활의 뒷전에 밀린 말을 동원하여 시를 완성한 백석의 언어감각은 이미 단순함이나 소박함을 넘어서고 있다. 삶과 시의 희망은 바다 밖 서구문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견디어 온 불행한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659




[2020-02-12 11:35:1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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