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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작성자 : 이병초 


밤길
이병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왜 혼자가 되었는지도
조금만 더 걸으면
밤을 갉아먹고 눈썹 빛내는  
그믐달 역이 있어
마음 속에 이는 바람소리
참나무 검표원에게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그 열차를 타면
차창 멀리 가물거리는 불빛들이
내 옆자리에 앉아
찐 계란을 까줄 것 같고
노른자가 살짝 묻은 손끝으로
귓불을 어루만져주듯
우표 수집했던 어린 날을
펴볼 것도 같다
창에 대고 입김을 불면
비료푸대로 막은 쪽창처럼 흐려지는 거울
짝짝이 눈썹을 비춰보며
아랫목에 참외씨 틔우던
그 지루한 냄새를 지나
걸림새 없이 살고 싶은
칼 한 자루 못 얻고
옥수수 잎같이 누래진 시간을 덜컹거리다보면
거기 두고 온 꿈의 핏덩이가
네 체온처럼 만져질 것 같다

참나무 검표원은
바람 속에 잠들었는지
오래 전 산으로 떠난 이들의 안부 캐느라고
그믐달 소지를 올리는 중인지
밤길 앓는 새소리
시냇물에 씻기는 새소리 끼고
고향역은 갈수록 멀다
                                   -『시산맥』, 2020년 봄호.

[2020-02-22 09:39:3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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