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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1. 청춘, 1980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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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1> 청춘, 1980
  




 봄은 왔지만, 온전한 봄을 느낄 수 없는 날들. 차갑게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줄 치유의 손길이 필요한 때다.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이 가슴 속에 사무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본보는 작가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모아 한 장의 엽서에 띄워 보낸다. 하나의 노래가 작가의 기억 속 풍경과 어떻게 만나고, 문학적 영감으로 피어나는지 귀 기울여 주시길…. 어느 순간, 말갛게 씻긴 마음과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 <편집자주>  

 여기저기를 떠돌다 나는 1984년에 우석대학교 국문과 야간 학생이 되었다. 등록금을 벌어야 했으므로 야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막노동판 잡부를 등에 지고 1학년을 마쳐 가던 초겨울, 과 선배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등록금 면제 혜택이 있으니 도서관 근로학생을 해보는 게 어떻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말 않고 근로학생이 되었다.

 근로학생은 나를 슬프게 했다. 낮에 노동판을 떠도는 대신 도서관의 잔심부름을 하는 게 일이었으니 편하고 좋긴 했다. 그런데 4·19가 오면서 나는 아주 난처해졌다. 학우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캠퍼스를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주화를 외치며 최루탄에 맞서고 있었다. 학우들은 시내로 투쟁노선을 변경했다. 캠퍼스에서의 함성 소리가 세상에 미칠 리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었다. 도서관 근무를 끝내고 야간 강의를 들었던 그 시간, 학우들은 최루탄과 군홧발 소리에 맞서며, 5·18 노래를 부르며,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며 중앙시장 육교를 지나 관통로 사거리를 향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밤 9시 50분에 끝났다. 모두 스쿨버스를 타고 교내를 빠져나갔다. 그때 버스 라디오에서 들려왔던 노랫소리에 나는 감전된 듯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이렇게 시작된 가사와 선율은 내 목울대를 사정없이 감아버렸다. 산울림이 부른다는 「청춘」이란 노래였다. 삼례읍에서 전주 시내로 나온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었다. 불이 안 꺼진 점방에 들어가 소주 한 병 사서 목을 축이곤 했다.

 학우들과 함께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싶었다. 4·19정신이 뭔지, 어떤 세력이 통일을 가로막는지, 5·18이 왜 위대한 운동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시대적 모순의 한복판에 서 있고 싶었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교도소에 갔거나 군대에 강제징집을 당한 학우들의 소식을 내 삶의 정면에 놓고 싶었다. 그러나 형편은 그게 아니었다. 광장에 뛰쳐나갈 수 없는 내 처지가 한심해질수록 산울림의 「청춘」은 가슴을 후벼 팠다. 3학년 때부터 드문드문 강의를 빼먹기 시작했다. 데모대에 휩쓸려 오거리를 휘저었다. 나는 운동권과 관계없는 얼치기였지만 중앙성당 앞에서 관통로에서 만난 학우들은 정다웠다. 맘 놓고 펑펑 울 수조차 없는 이 세상, 최루가스를 핑계대고 펑펑펑 눈물 쏟을 수 있는 청춘의 밤은 뜨거웠다.

 그즈음 나는 발견했다. 「청춘」이란 노래 가사의 끝이 이상했던 것이다. 가사에 어울린 구슬픈 하모니의 내용은 결코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에 귀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빈 손짓에 맞물린 정처 없는 마음- 이쯤으로 요약되는 「청춘」의 음색은 오늘이 당장 지워지기를 바라는 허무적 색채가 짙었다. 이 궁금증을 무려 30여 년이 지나가버린 몇 년 전에야 전주대 이희중 교수의 글을 읽고 풀었다. 그에 의하면 「청춘」은 “언젠간 가겠지-”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갈 테면 가라지-”로 시작되었으며, 끝부분도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가 아니라 “차라리 젊지나 말 것을”이었다고 한다. 동국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희중 교수의 논문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청춘」이 1980년대 군부독재를 겨냥한 노래였는지 군부권력 하수인들의 검열에 걸려 가사를 바꿀 수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도.

 이 궁금증도 곧 풀릴 것이라는 듯 들판이 날로 푸르러진다. 자연의 이치는 변함이 없고 많은 것들을 품고 살지만, 나는 아직도 못 잊을 게 많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은 용서할 수 없다. 오랜만에 기타를 치며 불러보는 산울림의 「청춘」은 1980년대의 함성 소리에 좀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내 슬픈 심장 소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시절 20대를 통과한 불특정 다수의 내 동료들, 도로를 점거하고 해방감을 만끽했던 학우들은 요즘 어떤 노래를 들으며 마음 설레는지. 들판이 날로 푸르러 간다지만 아직도 고된 날의 연속인 “가고 없는 날”의 내 청춘은 꽤 쇠었다.

 글 = 이병초(시인, 전북작가회의 회장,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시인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등이 있다. 현재 전북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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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도민일보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5752&sc_section_code=S1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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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1 09:04:3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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