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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 시비평23. 신재순-바이칼호수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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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23. 바이칼호수 - 신재순




바이칼호수

꿈은 현실의 또 다른 세계다. 어제와 오늘이 뒤섞이듯 현실과 미래가 맞물려 있기 일쑤이고 나이조차 숫제 무시한다. 하지만 꿈속의 세계는 뭐든 이룰 수 있는 해방구이다. 현실은 하고 싶은 것보다 금기가 더 많은 불평등한 세계이므로 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소망의 통로로 작동되었다.

    
  



사회과부도를

보며 생각하지

내 꿈은

바다처럼 넓은

바이칼 호수에

가는 것

북극 빙하물이 녹아

흐르는 물은 여름에도

얼음처럼 차다는데

그 물에 발을 담그는 것

바다처럼 깊은

호수 물이 짜지 않다면

정말 짜지 않다면

내 어항 속 금붕어를

풀어놓고 싶을 거야

바이칼 호수 옆에

사는 친구를 만나면

바이칼 호수같이 넓은

서해 바다를 보여주는 것

바다를 본 적 없는 그 친구,

그 넓은 물이 온통

짜다는 걸 알면

뒤로 넘어가겠지

내 꿈은 그래,

바이칼 호수에 가는 것

바이칼 순환열차를 타고

호수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보는 거야

                                  -신재순, 「바이칼호수」, 전문





  시는 꿈의 세계를 언어로 옮겨놓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신재순의 시에 형상화된 꿈, 즉 소망도 여기에 젖줄을 대고 있다. 현실 가능한 미래를 꿈의 통로에 기대어 담백하게 진술한 「바이칼호수」, 이 시가 획득한 의미는 소망처럼 시행 옆을 넓게 차지한 여백이겠다.

  짧은 시행을 간섭하는 짧은 호흡, 여기에 표면화된 시적 상황은 정갈하다. 바이칼호수에 발을 담가보고 싶고, 금붕어를 풀어놓고 싶고, 바다를 본 적 없는 그곳의 친구에게 서해바다를 보여준 뒤 짠맛을 맛보이고 싶은 행위가 전부이다. 하지만 짧은 시행들 옆에 통째로 남아 있는 여백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세상이 시끄럽고 빡빡할지라도, 가슴 없는 세상이 멀쩡한 산천을 까뭉개어 콘크리트 건물로 꽉 채워갈지라도 신재순 시가 보인 것처럼 일반인의 삶은 의외로 깔끔하고 소망도 소박할 수 있다. 복잡하고 뻔뻔한 세상을 의연히 살아가고 있는 분들은 공허한 메아리를 베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 세상을 거꾸로 읽자는 뜻으로 읽히는 「바이칼호수」, 문명과 자본의 몸종이 된 세상이 천해지면 천해질수록 소망은 귀한 것 아니겠냐고 시인은 드넓은 여백을 남겨놨을 터이다.

  올해는 빚이라도 내어 바이칼호수에 가고 싶다. 당신과 함께 호수의 여백이 되고 싶다. 그런데 소박하든 거창하든 꿈은, 즉 소망은 단지 소망으로 남을 뿐일까. 그 이유가 정말 부박한 현실에만 있는 것일까.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23



[2020-03-12 15:47:4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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