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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껍질 외 3편
작성자 : 전홍준 


          바다의 껍질    외 1편

전홍준

태안군 고남면 고남리
바다의 뿌리가 걸려왔다
한 자리를 지킨 껍질들
다들 성한 몸이 아니다
자루 부러지고 목 부러진 채
깨진 파편들은 제각기
목숨을 다해 묻혀 있었다

물때 따라 흘러온 물살이
껍질에 무늬를 이뤄
겨울 안쪽에 여린 것을 품었다
손으로 빚은 민무늬토기도
갯벌 지워진 바다를 품는다
톡톡 칼끝으로 비린 삶을 파낸다

사람들 흔적없이 사라지고
자기 무덤을 이룬 껍질들
아낌없이 다 내주는 어머니처럼
시간을 채곡채곡 남겨둔
선사의 바다 껍질이
바스락거리며 되살아난다



      연약한 것들을 위하여



어떤 욕설은 정겹지만
어떤 욕설은 부르르 떨며
꼭 되갚아주고 싶을 때 있다  
나를 그렇게 부르르 떨게 하는 것들은
대체로 내 연약한 것들이다

나를 부르르 떨게 하는
내 연약한 것들을 위하여
칼을 배운다
매번 지는 싸움에서
내가 질 때마다 사범은 말한다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으로 독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고
독해져야 연약한 것을 지킨다고

    《문예연구》2020년 봄호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외 1편




일 돕는 아줌마가 안 나온 날
아랫집 이슬이 엄마를 불러
김밥을 쌌다 마음은 바쁜데
김밥 옆구리가 자꾸 터진다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 둔 딸내미
따라나서겠는 울음소리가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자꾸만 맘에 걸린다



     새벽잠도 잊어버리고


배들은 발이 묶이고
위판장도 모처럼 한가하다
힘을 쓰던 크레인도 고관절을 잠시 접었다
물칸도 한가하고 물고기 무게를 재던 수협직원도
물칸 앞에 없다

배를 키우고 그물을 늘려볼까
선급금을 차용해서 바람에 희망을 던졌던 몇 해
바다는 항상 희망을 되돌려 주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과 가난과 시름이
풀릴 것 같지 않던 그물처럼 얼기설기 엉켜 있더니

몇 년 만인가
물 갈 때 배질하라는 말씀이
뱃사람에게는 하늘이 준 말씀이다
새벽잠도 잊어버리고 토요일도 반납한
물때에 따라 물살을 헤쳐온 꽃게들의
활발한 발놀림이 분주하다
꿀맛 같은 하루를 보낸다

  《신생》2020년 봄호

[2020-03-26 09:50:1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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