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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26. 이 안-오늘부터 좋겠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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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26. 오늘부터 좋겠네 - 이 안




오늘부터 좋겠네 - 이안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뜻을 이뤄 가정을 꾸리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욕망의 존재인 각자가 자신을 비우고 서로 한 곳을 바라보는 지점은 ‘나’가 아닌 우리로 응결됨을 뜻한다. 하늘의 축복임이 분명한 이 인연의 결실은 인간사를 빛내는 모두의 오늘일 것 같다.  


강희는 1억5천671만 2천28년 걸려서

수희는 1억5천730만 3천26년 걸려서

도착했네

강희는 수희 앞에

수희는 강희 앞에



오늘 밤

강희는 강희를 벗고 수희를 입겠네

오늘 밤

수희는 수희를 벗고 강희를 입겠네



매일 아침

수희에게서 나온 강희가 수희에게

수희를 입혀주고

강희에게서 나온 수희가 강희에게

강희를 입혀주고

-중략



오늘부터 강희는

옷이 두 벌이어서 좋겠네

오늘부터 수희는

몸이 두 벌이어서 좋겠네

                     -이안, 「오늘부터 좋겠네」, 부분.
  




   유강희 시인의 혼인 식장에서 낭독된 「오늘부터 좋겠네」는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강희와 수희가 서로에게 오기까지 1억5천만 년이 걸렸다는 상상력은 하객들에게 시간의 군불을 지피도록 유도했다. 오늘 밤에 “강희는 강희를 벗고 수희를 입”을 것이라는, “수희는 수희를 벗고 강희를 입”을 것이라는 낭독은 하객들 귀와 눈을 한꺼번에 끌어당겼다. 어제까지는 서로 객체성이 강한 독립정부였지만 첫날밤을 지냄으로써 두 사람만의 공동정부를 수립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축시라는 한계를 벗어난 「오늘부터 좋겠네」는 동적이다. 한 부부의 탄생이 모두에게 기쁜 오늘이기를 바라듯 이 시는 사랑에 애가 타는 청춘들에게로 힘껏 확장된다.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기호가 인간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시절, 문명화될수록 더 많은 가면을 요구하는 시절일수록- 매일 아침 “수희에게서 나온 강희가 수희에게/ 수희를 입혀주고/ 강희에게서 나온 수희가 강희에게/ 강희를 입혀”준다는 언어의 결은 맑고 깊다.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4월 5일, 유강희 부부의 혼인 기념일을 축하한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2020-04-01 19:09:16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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