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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27. 황동규-풍장(風葬)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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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27. 풍장(風葬) - 황동규




풍장(風葬) - 황동규


  죽음, 그것도 자신의 죽음은 낯설다. 자신의 시신을 바람에 맡겨달라는 당부는 더 낯설다. 애증의 심경이 교차되기는커녕 제 주검을 딴 주검 대하듯 화자의 태도는 무덤덤하다. 제 목숨을 무기로 내놓는 불행한 시대의 징후를 “검색이 심하면”에 응축시켰기 때문일까.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황동규, 「풍장(風葬)1」, 전문




   시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가죽가방에 담긴 시신을 바람 앞에 내놓기 이전, 주검을 대하는 시의 행위가 사뭇 낯설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죽음 뒤에도 남아서 행세할 ‘구두’, ‘양말’, ‘전자시계’, ‘백금(白金) 조각’ 등의 물질적 속성도 편하게 읽힌다.
  

  햇빛은 알까. 이 시가 창작되었던 1980년대- 계엄군이 한 도시에 들어가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는 사실을. 산천이 포클레인에 함부로 까뭉개지고, 사람 목숨이 전자제품의 칩으로 비유되는 현재를 알까. 근대의 상징인 시간이란 사유조차 부정하듯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죽음 뒤까지 검색하듯 불심검문이 활개 치는 오늘을 벗어버리고 싶었을까. 화자는 “햇빛 속에” 발가벗겨진 살을 말리게 해달라고 당부한다.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고 싶은 화자의 목소리는 무인도의 늦가을 햇빛처럼 적막하다.

  시행에 허무적 색감이 더러 묻었을지라도 이 시는 초월적 세계를 갈망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가상현실에 기대어 제 시신을 바람에 맡기는 행위는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을 용케 버텨낸 자신의 일생에 대한 제사이며, 한 시인의 순교에 가까운 절망이자 열정이다. 사람다운 세상을 그리워하는 이 시는 여전히 우리의 아픈 오늘이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9






[2020-04-07 19:13:2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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