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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28. 이병초-잊을 수 없는 당신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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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28. 잊을 수 없는 당신 - 이병초

  

  강의를 할 수 없었다. 2014년 4월 17일 오전, 팽목항 바닷물에 갇혀 고교생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18세의 꽃송이들이 속절없이 숨 끊어지고 있었다. <한국문학의 이해> 강의실에서 말을 더듬는 내 태도에 학생들은 숙연했다. “나를 믿지 말라. 여러분의 선생인 내 경험과 인격을 믿지 말라. 내 얇은 지식은 지금 맹골수도(孟骨水道) 차디찬 바닷물에 갇혀 죽어가는 생명을 단 한 명도 살려 낼 수가 없다.” 목이 메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나는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바다 속으로 터널도 뚫는 시절에

  어떻게 304명이 바닷물에 갇혀 떼죽음당할 수 있냐고    

  파도는 제 몸 이랑이랑에 번뜩이는 촉기를

  비수처럼 꺼내어 들고

  저 뒤에서부터 몸을 날려

  산산이 박살난다



  이게 나라입니까? 우리가 먹잇감입니까! 팻말에 적힌 고교생의 글씨가 바위를 내리찍으며 박살날 때마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세월호 참살慘殺’이라고 피 마르는 팽목항

    

  등짝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파도의 살점이 튀어도

  대가리에 폭약을 장착한 듯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듯

  갈기갈기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일직선으로 바위에 내리꽂히며

  파도는 다시 박살난다

  "구명조끼를 다 입었다던데 그렇게 찾기가 힘듭니까?"라고 묻던

  사라진 7시간과 학생들이 떼로 죽어가는데도

  선장과 선원들은 죄다 탈출한 그 뻔뻔한

  이유를 밝히는 데서부터 진실은 시작된다고

  파도는 또 박살난다  

  뼈 비린 살점이 미치게 튄다

                                -이병초, 「참살(慘殺)」, 전문




  1년 뒤 나는 이 시를 썼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는 시를 쓸 수 없었다. 304명의 목숨이 떼죽음당한 현실을 나는 도저히 객관화할 수가 없었다. 밤이 오는 게 두려웠다. 이딴 게 나라냐고, 우리가 먹잇감이냐고 팻말에 적힌 글씨, 어쩔 수 없는 어른이 안 되겠다고 팻말을 들고 거리거리로 뛰쳐나온 고교생들의 맑은 눈망울이 밤마다 가슴을 후벼 팠다. “내 잘못이다. 골백번 뉘우쳐도 나는 어린 꽃들에게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어른이다.”라는 말조차 못하고 시간은 무작정 꺾이고 있었다.  



  2014년 5월 노란 리본을 매단 팽목항, 파도는 거셌다. 바위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못난 세상을 갈아엎고 싶은지 바위에 파도가 박살날 때마다 뼈 비린 살점이 튀는 것 같았다. 바닷물 차올라오는 선실에 갇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승객들을 구조하기는커녕 세월호를 빠져나와 해경 경비정에 제일 먼저 구조된 선장과 선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파도는 치를 떨었다. 일반인의 눈에 안 보이는 간악한 무리가 떼죽음시키지 않고는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수 없다고 파도는 사정없이 제 몸을 바위에 부렸다. 18세 꽃다운 목숨들을 살릴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헛되이 써먹고 구명조끼나 들먹이는 대통령의 불감증에 억장 막히던 파도. 국민의 마음을 한순간에 초상집으로 만들어버린 부도덕한 세력을 뿌리까지 응징하고 싶은 파도는 박살나고 또 박살났다.

  역사의 빚으로 남을 “잊을 수 없는 당신”은 이 시의 제목을 「참살(慘殺)」로 붙이도록 요구했다.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라고, 갈아엎을 것들은 싹 갈아엎자고 오늘도 팽목항의 파도는 거셀 터이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m.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15














[2020-04-16 08:54:3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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