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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철쭉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진달래와 철쭉

코로나에 봄을 빼앗긴 채
자가격리된 경기도 용인시
보라산 기슭 피오레아파트

피오레는 이탈리아 말로 ‘꽃’이라던가
이름값 하려고 작정한 듯 이른봄부터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지지만
꽃이란 꽃은 다 모인 듯한 이 아파트에
무슨 앙심인지, 반평생 봄마다
나를 들뜨게 하는 진달래만 없다

요새는 꽃 피는 순서도
뒤죽박죽 엉망이라지만
눈여겨보면 꽃 피고지는 일
그런대로 다 순서가 있던데
매화 산수유 개나리
그 다음이 진달래던가 목련이던가

진달래 없는 아침저녁애
이빨 빠진 듯 새는 길 잃은 바람
온갖 봄꽃들 피고지는 동안
길 잃은 바람은 오로지
진달래꽃만 보고싶었다

길 잃은 바람 사이로
봄꽃들 대충 피고 진
꽃보다 고운 연초록 물결 사이로
진달래 보듯 날 좀 보라며
한바탕 바람피다 돌아온 화장빨로
무더기 무더기 떼지어
부끄럼도 잊은 철쭉꽃 핀다
                                       
                         2020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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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캐러 왔다가  

뜰에 옮기려고
진달래 캐러 왔다가
진달래꽃 흐드러진 산자락,
삽자루에 기대어
넋놓고 꽃구경만 한다

마음 다 비운 듯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아무래도 꽃들이 심상치 않다
화장기도 화냥기도 없이
그냥 바람난
바람난 게 무언 줄도 모르고
그냥 바람난
아슬아슬한 여자애들만 같다

누가 진실로 마음 비우고
하염없이 바라본다면
그 곁에 다가와 비로소
맘놓고 곱게 필 진달래꽃

꽂았던 삽 뽑아들고
돌아보지도 말고
그냥 돌아갈거나

그냥 돌아가고픈 속을
환히 알고 있는지
어디 한번 일 저질러 보라고
깔깔거리는 산자락마다
흐드러지는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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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밭

스무 해 넘도록 이 길을 다녔습니다
바람도 가라앉은 적막한 녹두광장 옆
밤 깊은 흐드러진 철쭉꽃밭이
오늘은 내 무딘 눈길을 빼앗습니다
열 아흐레 이지러진 달빛이
덩달아 발길을 멈춥니다

한사코 눈길을 사로잡는
꽃잎과 달빛의 이 찰떡궁합,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해마다 늙어간다던
가물거리는 唐詩 한 구절이
오늘밤엔 바늘 끝처럼 서럽습니다

이곳에서 수없이 떠나간 얼굴들이
떠나가고 떠나가고 남은 세월이
바라볼수록 쓰라리게 글썽거리고
서럽거나 그립거나 쓸쓸하거나 말거나
달빛은 막무가내로 꽃잎에 몸을 섞네요

보고픈 뺨 비비며 묵은 그리움 섞을
그런 꽃밭이 어디 여기 뿐이냐고
밤이 깊었다고 어서 가자고
구름 비낀 달빛은 자꾸만
속 보이는 딴지를 걸어옵니다
                                                        
  녹두광장: 우석대 삼례켐퍼스 입구에 있던 잔디밭


[2020-04-26 19:23:5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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