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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0. 정영길-나는 누구인가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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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30. 나는 누구인가 - 정영길




나는 누구인가

몸과 마음을 둘 데가 없어서 “그림자마저 외상이었”(「이상, 날다」)던 청년. 오랫동안 가난을 숙명처럼 애무했을 사나이. 세상과 도저히 친하지 않은 그가 화두를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가 저긴가

저기가 여긴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이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밤이 낮이고

낮 또한 밤인 걸



시간의 다람쥐가 되어

혼자 눈먼 물레를 돌리는

당신은 누구인가

                       -정영길, 「도하의 아침」, 부분.

  


  당신은 ‘나’이다. 이 시에서 화자가 “사는 건 결국/ 저녁놀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진술한 태도는 화자와 시인이 동일시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당신은 누구인가 또는 나는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여기와 저기 그리고 낮과 밤이 한타래라는 시의 인식은 삶에 오래 매맞아본 자의 눈망울을 짐작하게 한다. 그 눈망울은 “황사가 그리다 만 도시의 수묵화”(「변두리에서」)를 지우고 싶고 외딴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동무 삼고 싶다. 외로움조차 귀찮은 나이를 벗어버리듯 시간의 “눈먼 물레”를 돌리는 당신. 한때는 돈보다 꽃을 좋아했던, 새가 되고 싶었던, 꽃답게 죽지 못한 청춘을 오래 앓았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풍경이 되고 싶었던, 독창보다는 합창을 꿈꾸었던,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던 당신과 ‘나’.

  어딘가에 두고 온 ‘나’를 찾고 싶다면, 지금 여기가 당신의 삶 어디쯤인지가 궁금하다면 문단에 데뷔한 지 무려 38년 만에 첫 시집을 낸 정영길 시인의 『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를 꼭 읽어봐야 할 일이다.

  그의 시편들은 슬프게 때론 정답게 시의 오솔길을 내고 있지만 삶에 물린 비극성을 숙성된 술의 향기처럼 감지하고 있다. 황혼은 “당신이 남긴 유서”(「지구는 별이다」)이며, “비겁함도 재산인”(「망월동 가는 길」) 이력을 느린 진양조로 감아들인다. 오늘도 “비바람에 팔다리 뒤틀려도/ 상처가 아물어 힘이 된 나이테를”(「금대암 전나무」) 힘껏 껴안고, 살아갈수록 삶은 욕망의 해체 과정이라는 듯 왕십리 낙타가 되기도 한다.

  어제를 되돌아보듯 느린 걸음을 떼다 말고 그는 다시 세상을 향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12








[2020-04-28 13:32:4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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