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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1.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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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31.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이 시는 1983년에 출간된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수록되었다. 시의 배경은 영화관이다.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다소곳이 애국가를 먼저 들어야 했다. 시대착오적인 이 촌극은 1971년 3월 1일, 박정희 독재정권 하의 문공부가 "애국가의 올바른 보급과 존엄성, 애국심 고취를 위한 조치"라고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농도 짙은 에로물을 상영할 때도 어김없이 애국가 영상을 내보냈던 촌극은 1989년 1월 20일에 폐지되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전문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삼천리 화려강산을 날아오르는 흰 새떼들을 보았다. 그들은 횡대를 이루며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애국가가 섞인 영상은 깨끗했다. 을숙도에서 이륙하는 새떼들은 자유로웠고 영상에 비친 자연은 말 그대로 금수강산이었다.

  1980년대의 한국 현실은 화려강산일 수 없었다. 박정희 독재가 붕괴되었어도 다시 군부독재가 들어서서 시민들의 숨통을 조였다. 농촌공동체는 붕괴되었고 노동현실은 악화일로였으며 사람들은 가난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광주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다는 데 있었다.  

  흰 새떼들이 ‘끼룩거리면서’ ‘낄낄’댄다는 음성상징어가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새들이 끼룩대는 소리를 인간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로 끌어내린 행위는 군사독재 정권을 야유하는 것에 가깝다. 어딘가로 떠나지도 못하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주저앉는 관객의 절망감은 이 시가 뜻하는 작은 부분에 속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을 보여주면서 애국을 강요한 작태가 되레 한국을 떠나고 싶은 욕망으로 뒤바뀐 반어, 그것을 애국을 강요한 자들에게 되돌려주는 통쾌함- 이 신랄한 풍자 정신이 시의 목적일 터이다. 적의 칼로 적을 베고 싶은 시의 욕망이 아직도 생생하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94









[2020-05-06 09:01:3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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