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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2. 이영광-휴식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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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32. 휴식



휴 식

늙고 병든 가구에 닿은 시의 눈길이 따뜻하다. 풀섶에 자잘하게 핀 꽃들을 아끼듯 가구들에 말을 건네는 목소리는 살갑다. 소외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소외되었을 이력들 마음이 펴지지 않아서일까. 남들 일할 때 나도 일하고 남들이 쉴 때 나도 쉬는 노동현실이 멀어서일까. 목련나무 아래에 적힌 삶이 절실하다.




봄 햇살이, 목련나무 아래
늙고 병든 가구들을 꺼내놓는다
비매품으로

의자와
소파와
침대는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그덕거린다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들여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에게는 소파가
침대에게도 침대가
필요하다

아니다, 이들을
햇볕에 그냥 혼자 버려두어
스스로 쉬게 하라
생전 처음 짐 내려놓고
목련꽃 가슴팍에 받아 달고

의자는 의자에 앉아서
소파는 소파에 기대어
침대는 침대에 누워서


                              -이영광, 「휴식」, 전문.



  시의 관심은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그덕거린다”라는 가구의 불편함에 있다. 의자로 소파로 침대로 한평생을 타인의 휴식 자리가 되었던 가구들은,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오느라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늙고 병든 가구들이 ‘비매품’으로 자리보전하는 모습은 제 몸을 다치면서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인간의 노동현실로 시적 의미를 넓힌다. 가구들을 두고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이들을/ 햇볕에 그냥 혼자 버려두어/ 스스로 쉬게 하”라는 화자의 목소리는 되게 물린 이빨자국처럼 아프다.

  누구든 일터라는 전장(戰場)에서 “꼼짝없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고, 누구도 산업전선이란 말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노동에 자본의 불순한 숫자를 들이대지 말라는 외침은 공허해진다. 일에 파묻히는 오늘이 재래식으로 고달프다. 그러나 시의 눈길은 따뜻하다. 사람들 주머니 속이나 파먹는 자본 이론을 저만치 밀어두고 생계에 지친 이들을 늙고 병든 가구처럼 보살피고 싶다.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m.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91
* 출처인 전북포스트에는 시 일부가 생략되었는데 옮겨오면서 전문을 실었습니다.






[2020-05-11 14:55:5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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