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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4. 장현우-거미집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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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34. 거미집 - 장현우

  

거미집

  무욕의 시학이란 말이 있다. 문명성의 담론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시학으로 읽히거나 자본의 불순한 징후를 포착하겠다는 전략적 시 쓰기와도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의 화두가 사회이든 자연이든 무의식이든 그것을 오래 궁구하되 자연과 삶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뜻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른 아침 매실나무들은

군데군데 커다란 고치처럼

하얀 실타래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슬방울도 방울방울 매달렸습니다

햇살에 방울방울 눈부신 거미집,

그 집에 세 들고 싶어

바람도 서성이다

그 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산골짝이 일제히 반짝입니다

                           - 장현우, 「거미집」, 전문



  

  거미줄에 감긴 매실나무가 이슬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화자에겐 매실나무가 하얀 실타래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뭇가지와 거미줄과 이슬방울이 바람과 어울려 ‘집’을 얻은 언어의 무늬가 일제히 반짝이기 시작한다.

  화자는 ‘바람도’ 거미집에 세 들고 싶다고 입을 연다. 바람이란 시어에 방점처럼 찍힌 ‘도’라는 보조사가 눈길을 끈다. 거미줄에 이슬이 방울방울 매달려 햇살처럼 빛나는 집에 바람만 세 들고 싶은 게 아니라 산골짝도 거미도 화자도 세 들고 싶다는 뜻을 보조사 ‘도’는 함의하고 있다. 시는 누구든 욕심낼 만한 집을 지어낸 것이다.

  거미집은 순수와 비순수라는 인간의 지식과 아무 관계없는 자연의 집이다. 인간도 짐승도 산골짝도 넘볼 수 있는 세계이다. 그래서일까. 바람이 이슬방울을 하얀 고치처럼 두른 “그 집 대문을 두드”린다는 진술은 산골짝의 목소리로 들린다.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산골짝이 일제히 반짝입니다”로 시상을 맺은 시의 울림은 산천의 비밀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보고, 두르고, 매달리고, 세 들고, 서성이고, 두드리고, 반짝인다는 동적 시상전개와 시각적 이미지가 절묘하게 지어낸 산골짝 집 한 채. 문명적 색채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詩)의 풍토 정반대 지점에서 자연을 해석하는 시인의 눈길은 소중하다. 장현우의 시편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욕의 시학이란 말이 가깝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7





[2020-05-27 09:08:0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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