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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6. 정 양 - 내 살던 뒤안에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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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36. 내 살던 뒤안에- 정 양



내 살던 뒤안에 - 정 양


한 편의 시에 전율과 감동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을까. 정서적 충격과 경이감을 뚫고 역사처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정양 시인의 「내 살던 뒤안에」를 읽은 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시의 촉수를 빛내는 미학은 비상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감동의 폭을 넓힌다.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 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정양, 「내 살던 뒤안에」, 전문.




  시상이 단번에 독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뒤안에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다는 비유는 생생하다. 구렁이에 놀란 아이들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는 눈부심을 지나 구렁이 몸에서 “햇빛이 치잉칭 풀리”는 데로 닿는 경이로운 활력은 언어미학이란 말 한참 위에서 반짝인다.  



  새소리와 팔매질과 감꽃과 손가락질과 햇빛이 구렁이에 맞물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는 정황은 차라리 전율이다. 살아서 못된 짓을 일삼은 자가 구렁이로 환생한다는 속설을 믿었을 사람들. 순박하달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저주가 구렁이 몸에 몰매처럼 감기는 것을 보면서 화자는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이 날은 6‧25전쟁 초에 행방불명된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예언한 날이었다. 그런데 구렁이가 나타났다. 화자의 꿈속에까지 따라와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으로 사라지는 실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가슴 두근거리며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다는 서늘한 고백이 왜 현재로 재생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시가 역사의 숨통을 물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저주의 대상이 된 구렁이는 짐승이 아니라 부도덕한 집권세력이 만든 불순한 상징임을 모르는 독자는 없으리라.  

  친숙한 단어들과 비유로 형상화된 「내 살던 뒤안에」는 한국 시사(詩史)에 길이 빛날 절창이자 충격이다. 불행한 역사를 이 악물고 지켜보겠다는 듯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감꽃들이 두근거리며 피어 있다.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12














[2020-06-09 15:08:0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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