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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37. 안성덕-장대비를 가르는 법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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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37. 장대비를 가르는 법 - 안성덕



장대비를 가르는 법

안성덕의 시는 문명사회가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문명의 이중성을 거절하는 불온성에서 발화된다. IT산업이 가진 금속성, 환각성 등에 시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삶의 건강한 행위에 애정을 보인 안성덕의 시는 첨단의 방법론이 무색하리만큼 정제되어 있다.



처마 밑이 순간 환하다



활처럼 둥그렇게 등줄기를 당기던 고양이

튕겨 나간다

쏜살이다

어둠을 쏘던 눈빛이

장대비를 가른다



당길수록 더 재고 더 멀리 날아가는 법

스스로 터득했던 거다

살촉처럼 꽂히는 빗발 속으로

말았던 제 몸뚱이를 놓는다



빗발을 뚫는 저 안간힘은

등골 깊숙이 메워진 막막함이다 웅크린

제 등이다

-중략



처마 밑,

번개보다 빠르게 사내가 웅크린다 뻑뻑

젖은 담배를 빤다

                        -「장대비를 가르는 법」, 부분.



  처마 밑에 웅크려 있다가 장대비 속으로 튀어나가는 고양이를 사내가 젖은 담배를 빨며 바라본다. “당길수록 더 재고 더 멀리 날아가는 법”을 터득한 고양이, 그의 삶의 동력은 막막함과 웅크림에 있다. 화살촉처럼 내리꽂히는 빗속으로 튀어나가는 행위를 두고 “빗발을 뚫는 저 안간힘은/ 등골 깊숙이 메워진 막막함이다”라고 화자는 읽기 때문이다.

  막막함과 웅크림을 견디는 무더운 시간은 고양이에게만 닿지 않는다. 역사에 점철된 불평등은 사람에게 이보다 더 지독한 고독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돈을 신앙 삼은 시절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숨통을 조여야했던 야만의 경제를 견딘 사람일수록 눈이 맑아지는 것일까. 외롭게 산다는 뜻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거세된, 야성을 잃어버린 미래가 너무 잘 보여서 앞이 캄캄한 것은 아닐까.

  그악스러움, 민첩함, 눈알의 번뜩거림 등 인간이 잃어버린 야성을 바라보며 젖은 담배를 빠는 사내가 매우 가깝게 보인다. 등골에 꽉 들어찼을 막막함을 젖은 담배로 푸는 사내, 화자와 동일시되는 그는 이미 야성에 소외된 우리이다. 얼마나 자주, 입이 짧아지도록 매번, 생목이 오르도록 먹잇감에 굶주렸을 것인가.  /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02






[2020-06-16 09:40:2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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