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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40. 박기영-청국장반대기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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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40. 청국장반대기 - 박기영



박기영 시인의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은 귀한 시집이다. 사람만큼이나 사람의 행위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시편들은 분단 이전의 삼천리강산을 품고 있다. 시단에 만연한 번역 어투를 아예 모른다는 듯 우리말 본래의 쓰임새를 표면화 한 시편들 속엔 ‘나’와 ‘우리’가 진하게 엉겨 있다.




구린내 누릿누릿 나는 청국장

손바닥으로 다지면서 아버지는 말했다



“남쪽 에미나이들은 이 맛을 몰라.

산이래 조그만 해가지고

며칠씩 눈 속을 헤매봐야 알디.”



열네 살, 포수되어

평안도 맹산 험한 등줄기 타고 다녔던 아버지

여름에 입맛이 없으면

콩을 띄워, 청국장반대기 만들었다.



한 보름 길도 없는 산, 눈발 헤치며

짐승 쫓아 헤맬 때 주머니에 싸고 다녔다는 음식.

소금과 청국장 손바닥으로 다져

숯불에 구웠던 세월.



불쑥하고 그 사라진 시절 낯선 땅에 떠오르면

노인은 맹물에 찬밥을 말아서

짜디짠 청국장반대기 한 점씩 뜯어 삼키며

범보다 무섭다는 피난살이 온갖 설움

목젖 깊이 넘기며 중얼거렸다.



“에미나이들은 이 맛을 몰라.”

                             -박기영, 「청국장반대기」, 전문.



  아버지의 이력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열네 살에 포수가 되어 평안도 맹산의 등줄기 타고 짐승을 쫓았다니. 길도 없는 산에서 보름 동안 눈발 헤치며 짐승을 쫓을 때 “소금과 청국장 손바닥으로 다져/ 숯불에 구”워서 먹었다는 세월이 아득하다.

  구개음화가 안 된 ‘알디’라는 서술어와 ‘에미나이’라는 명사, 무뚝뚝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에 그간의 사정이 들어붙는다. 아버지는 피난민인 것이다. 어째서 남으로 내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삶이 풍족했던 것 같지는 않다.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남쪽의 ‘피난살이’는 사람 속을 얼마나 자주 새우젓 멸치젓으로 만들어버렸을 것인가.



  입맛 없다는 핑계를 대고 손바닥에 다져서 청국장반대기를 만들 때면 평안도 맹산의 등줄기 타고 짐승을 쫓았을 아버지. 백두산이 거느린 험준한 산봉우리들 곁에 끝내 못 가고 “맹물에 찬밥을 말아서/ 짜디짠 청국장반대기 한 점씩 뜯어 삼키”던 아버지의 한스러움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시에 이북 단어 몇 개와 말씨가 섞였다고 해서 북방 정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씨는 될 수 있다. 우리 정서의 고유성과 정체성의 뿌리가 이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박기영의 시편들은 보여주기 때문이다, 옻순비빔밥과 「도루메기」와 칼날 사이로 “스며든 기름진 죽음들”(「도부일기」) 등에 적힌 시정신은 꿩육수에 만 메밀국수 가닥처럼 찰지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99















[2020-07-06 18:10:4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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