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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객들!
작성자 : 이병초 


망명객들(외 1편)
이병초


새벽 폭우를 틈타
제 세상을 잃고
내 방으로 뛰어든 망명객들이
천장 여러 곳에서 줄줄 샙니다
양푼과 바가지와 걸레를
빗물 떨어지는 데 받쳐놓고 동태를 살핍니다
그릇에 빗물이 채워지면 비워내고
축축해진 걸레는 뽈깡 짜서 다시 받칩니다
망명객들은 낙하산도 안 타고
천장에서 줄줄줄 뛰어내립니다
이들을 찾는 빗줄기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집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살나
식탁에 도마에 방바닥에 튀는 빗방울들이
뒤꿈치로 까뭉갠 꿈의 지적도 같아서
마음이 짠합니다
이들 틈에 낄 새도 없이
새벽잠을 줄줄줄 털린 보초병은
더큰 그릇을 찾으며
문 밖의 동정도 살핍니다



풀벌레소리


밤 깊도록 죄를 캐는
미치게 더운 풀벌레소리
피할 곳도 숨 막히는 무더위를
생략할 길도 없다
땡땡 얼린 얼음물병을
사타구니에 끼었으니
곧 시원해지겠지  
글씨를 찍찍 갈겨쓰듯
내 몸속에 눈깜땡깜 구겨 넣었던 시간도
찬찬히 서늘해지겠지
군데군데 이 빠진 톱을 꺼내어
밤 깊도록 무더위를 켜는
바람 한점 안 묻은 풀벌레소리
새물내 풍기는 옷 입고
사각거리던 밤처럼 그래,
더 들어와, 깊숙이 더 깊숙이
땡땡 언 불알 밑에서 꿈틀거리는
이 저주의 쾌감
  
납작해진 얼음물병을 바꿔 끼우면
풀벌레소리가 더 맹렬하다
목숨 벗으면 입고 갈 제 삼베옷을
눈깜땡깜 짜대는가 보다
                               -『시에』, 2020년, 가을호.

덧글: 선생님, 지용과 경옥 씨의 소식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지용은 지금 어떤 대학병원에서 긴호사로 있다고 들었고, 경옥 씨는 완주군청에 근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좀더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긴 장마가 그치니 폭염입니다. 선생님, 무더위 건강하게 건너셔요. 병초 올림.

[2020-08-18 06:52:3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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