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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46. 홍민석- 길,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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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46.길,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 홍민석



길,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삶의 묘미가 역순행일 수도 있겠다. 저녁 식탁에 올라온, 화덕에 구워지는 물고기를 보면서 자신의 전생(前生)을 추려보는 것도 끼니의 묘미이겠다. 오늘은 안녕했는가, 내일도 별일 없겠지, 일이 생기면 또 어떤가를 물고 있는 시간은 입맛을 돋운다.



전생에 나는 물고기였나 보다

지느러미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물속을 그렇게 유영하다가

낯선 바위틈에 몸을 누이고

뻐끔뻐끔 소리 없이 세상을 부르네.

아가미 사이로 물방울들 내뿜을 때마다

그 속에 갇히는 몸뚱이 바라보며

그렇게 화석으로 굳어버린 물고기였나 보다.

전생에 나는 물고기로 살아

깊은 잠, 깊은 어둠을 열고

이른 새벽이슬처럼

때론 안개처럼 슬며시 깨어나는구나.

지느러미 가득 세상을 품고

비늘에 부딪히는 아픔으로

흐느적거리며 취해가는 길,

취한 세상 속을 향하여

화덕 위의 뜨거운 불길에

온몸을 퍼덕거리는구나.

                   -홍민석, 「길,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전문.
  


  불길에 구워지는 물고기를 보는 순간 시상(詩想)은 전생으로 점프한다. “아가미 사이로 물방울들 내뿜을 때마다/ 그 속에 갇히는 몸뚱이”가 보인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지느러미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뻐끔뻐끔 세상을 부른 적이 있다. 하지만 물속의 삶도 녹록치 않았을까. 자신이 뿜어낸 물방울들에 되레 자신이 갇혀 화석이 되었다.

  그는 구워지느라고 “온몸을 퍼덕거리는” 현생의 물고기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화석이 되기 전 “지느러미 가득 세상을” 품었던 전생을 떠올린다. 물방울 뻐끔거리며 “비늘에 부딪히는 아픔”을 견디던 때를 헤아린다. 사람으로 치면 살갗일 비늘, 거기에 닿은 아픔은 시상이 역순행인 것처럼 물살을 거스르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을까.


  술에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전생에 자신이 화석이 된 사연은 시에 나와 있지 않다. 시에 적힌 시제가 왜 혼란스러운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뜨거운 화덕 위에서 온몸을 ‘퍼덕거리는’ 물고기가 낯설지 않다.


  ‘물방울’이란 단어가 시 전체를 간섭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 어둠, 이슬, 깨어남, 세상, 취함 등등의 시어는 물방울에 뿌리를 잇대고 있다. 물방울은 욕망 즉 꿈으로 읽히는데 그것이 자신을 해치는 독(毒)으로 작용할지라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을 터이다. 모두 그렇게들 살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 시의 눈매가 촉촉하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72







[2020-08-20 09:49:4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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