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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처서(處暑) 2


냇물이 한결 차갑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

뒤돌아보는 일 없이

어제도 이렇게 흘러갔었다

흘러가서 아주아주

소식 없는 것들아

흘러가는 게

영영 사라지는 몸부림인 걸

흘러오는 냇물은 미처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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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서라는 절기의 특징을 사색적 감정적 체험으로
녹여내어 구체적인 감정을 직접 토로하는 시형식입니다.

  생성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흘러가고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한데 그 되돌아올 수
없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쳇말로 ‘꺾어지는 시점’입니다. 처서가 바로 여름이 꺾어지는 지점입니다.

- 새삼스럽지만 처서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 뒤돌아보는 일 없이/ 어제도 이렇게 흘러갔었다”고 확인시켜 줍니다. 그렇게 흘러갔기에 오늘 냇물이 한결 차가웠고, 또 그렇게 흘러갔으니 처서라는 절기도 온 것입니다. 다만 처서가 그런 사실을 확연하게 느끼게 한 것입니다. 물론 차가워진 물이 정신 번쩍 들게 하여 확연해졌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확연히 느낄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라는 생성 속의 존재와 “뒤돌아보는 일 없이”라는 그 존재의 삶의 태도가 새삼스럽게 명료해집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누구도 다 이런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돌아가리라고 말하고 연연해합니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일이 이런 마음에서 빚어질 것입니다. 하더라도 생각해 보면 그 외로 삶이란 게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생성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존재이고, 그렇기에 뒤돌아보는 일 없이 흘러가야 할 존재임을 알아 때에 이르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처서의 차가워진 물이 새삼 그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생에 대한 감정을 토로합니다. “흘러가서 아주아주 소식 없는 것들아/ 흘러가는 게 영영 사라지는 몸부림인 걸/ 흘러오는 냇물은 미처 모르나 보다”. 여러분들은 뭔가를 연연해하며 이루려는 몸부림과 사라지는 몸부림이 다 흘러감의 다른 이름이고 삶의 다른 이름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이제쯤 한결 차가워진 처서의 냇물 같은 삶의 태도를 배움직도 하지 않습니까.

  처서의 특징적인 면이 한결 차가워진 냇물을 계기로 하여 이런 삶에 대한 이해와 태도라는 구체적인 감정으로 변하여 직접 토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정세계를 직접 들려주기는 시 쓰기 절차가 조금 복잡합니다.

-글/오철수


[2020-08-22 13:30:0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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